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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님 May 25. 2024

우엉조림

2021년 어느 날

막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티슈를 뽑아 든 손에 같이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 언니! 엄마 오시기로 하셨어요?" 4층 본점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의 전화였다.

" 우리 엄마? 아니?"

" 언니 엄마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는데!"

" 우리 엄마라고? 어? 얘기 없었는데? 금방 내려갈게!"


본점보다 두 층 위에 있는 사무실에서 토요일마다 아르바이트하는 나는 바로 사무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계단을 다 내려와서 철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계신 분이 우리 엄마가 아니더라도 어른이 기다리고 계시니 마음이 급했다.


직장 동료가 엄마에게 '전화벨이 울려요!'라고 말해주는 찰나 내가 문을 열었다. 4층 복도에는 정말 우리 엄마가 내가 친하게 지내는 직원이랑 같이 서 계셨다.


엄마다!


엄마!! 하면서 얼른 엄마 곁으로 갔다. 우리 엄마가 나를 보러 오셨다.


"엄마 어쩐 일이야!!"


"엄마가 반찬을 했는데 주려고 왔지

우엉조림이야~" 하시며 작은 쇼핑백을 건네주셨다. "집에 가면서 핸드폰만 보느라 지하철에 두고 내리지 말고 잘 가져가~"

눈치 빠른 직장동료는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서 바카스 하나를 들고 온다.


잠시 복도에 서서  엄마와 아빠의 안부를 물었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아 어수선함을 느낀 엄마가 서둘러 집에 가신다고 하시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셨다.


"엄마 고마워! 잘 먹을게요."


"그래 안녕!"


엄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셨다.  오셨을 때처럼 갑자기 가셨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방문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6층 사무실 내 가방에 우엉조림을 갖다 두고 4층으로 내려오는데 문득 엄마가 너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바보 바보 그냥 엄마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갈걸.. 주 1회 아르바이트 근무라서 조심스러운 마음에 엄마 모셔다 드린다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그냥 엘리베이터를 누른 게 속상했다.


부장님 말씀드렸으면 흔쾌히 잠시 다녀오라고 했을 텐데.... 먹먹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 내 사랑하는 딸!"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냥 눈물이 난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귀가 잘 안 들려서 목소리가 커지는데 버스 안이라 최대한 목소리를 줄여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엄마!!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가서 인사하고 헤어질걸 후회되어서...."

나는 울먹이며 얘기하지만 엄마는 잘 모른다.

"아니야! 엄마가 우리 딸 얼굴이 보고 싶어서 주러 간 거야 신경 쓰지 마. 일 하는 시간인데 어떻게 마음대로 나와. 버스 타고 금방 가는데 뭘.."

"엄마 우엉조림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래! 엄마가 더 맛있는 거 못해줘서 미안하지..
엄마가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예쁜 애들도 낳고 잘 키워줘서 고마워! 자기 전에 매일 네가 올려준 동영상 보고 잔다.
엄마 잘 들어갈 거니까 걱정 말고 일 잘하고 이따 집에 조심히 들어가!"

"엉 엄마~ 안녕"


전화를 끊고 나서도 엄마 생각에 한동안 먹먹했다. 그저 우엉조림 반찬을 가져다주신 것뿐인데 뭐가 눈물이 나냐 우습게 볼 수도 있겠지...

70이 훌쩍 넘은 엄마가 불혹 넘은 딸에게 반찬을 해주고 싶어서 단단한 우엉을 채 썰고 맛있게 만드셨모습이 떠르고,


혹시 냄새나 간장 양념 국물이 밖으로 샐까 낡은 반찬통 위에 비닐봉지로 한번 더 감싼 모습에,

엄마를 멀리 배웅하지 못하고 바로 인사한 내가 바보 같아서 눈물이 났다.


이 나이에 크게 한자리하지 못하고 경력단절녀로 눈치 봐야 하는 내 처지가 부끄러웠다.


엄마는 나를 만나러 오려고 제일 예쁜 원피스를 입고 단아한 모습으로 나를 찾으셨다. 갑작스럽지만 엄마를 만난 게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아이들이 우리 엄마 반찬을 더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퇴근길에 김밥 재료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김밥을 싸야지.

깨 한 톨도 안 남기고 잘 먹을게~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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