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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님 May 03. 2024

반질반질한 수치심

반짝이는 엉덩이

우리 집 재정상태가 제일 어려웠던 시절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물론 나의 기억 속 기준이지 우리 집은 항상 어려웠다.)

1997년 IMF로 대한민국 대부분이 어려웠을 때보다 무려 5~6년이나 전부터 숨길 수 없는 가난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 국민학교 4학년 때에는 가난해 보인다고 같은 반 제일 말썽꾸러기에게 놀림받기도 했다. 타깃이 된 이유는 무릎이 해진 바지를 엄마가 다른 천을 덧대어 기워주셨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반박할 수 없는 한 마디를 덧붙여 나의 가난에 쐐기를 박았다.



너네 집 냉장고 연두색이지!


탱크주의 선언이라는 광고로 한참 인기를 끌었던 역삼감형 TANK 로고의 큰 대우전자 냉장고가 대부분의 집안에 새로 들여졌을 시기였다. 실제로 우리 집은 오래된 연두색 냉장고 (냉동실이 잘 안 닫혀서 꾹 밀어 넣듯이 닫아야 했던)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더 가난했고  태어난 이후로도 꾸준히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1993년 2월 셋째 주

엄마와 나는 내가 얼마 뒤에 입학할 중학교에  함께 가서 졸업한 선배들이 기증하고 간 헌 교복 더미들 속에 그나마 깨끗한 교복이 있나 찾고 또 찾았다.
과학실 넓고 긴 책상들 위에는 재킷, 조끼, 블라우스, 치마 각각 종류별로 수북이 쌓여있었는데 그 헌 교복들을 이것저것 꺼내보고 몸 위로 대보며 사이즈 맞춰  가져왔다.


 무료였는지 한벌에 천 원, 이천 원 정도의 가격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빨리 그 무더기 속에서 그나마 입을 만한 것을 먼저 선점해야 했으니 몸과 마음 모두 몹시 분주했던 것만 생각난다.


집에 와서 세탁 후 입어 본 헌 교복은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았다. 옷 입은 위로 대충 눈대중 후 집어 온 거라 조끼와 치마는 품이 너무 크고 재킷은 길이가 좀 짧았으며 블라우스의 칼라는 아무리 다림질해도 쭈글쭈글했다.

새 교복은 입지 못해도 엄마가 시장에서 새 운동화와 가방을 사주셨는데 나의 새 물건들은 초라하기만 했다.  나는 브랜드를 전혀 몰랐었는데 입학 후 며칠 만에 나의 운동화와 가방은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청소년에게는) 부끄러운 시장표 짝퉁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물려받지 않은 새것이라는 게 너무 좋았었는데 더는 좋지 않았다.
 
단정하고 각 잡힌 새 교복들 사이에 각 무너지고 팔꿈치와 엉덩이가 반질반질한 헌 교복을 입은 나를 제일 속상하게 했던 전체 조회 시간.
나 포함 몇몇을 제외한 신입생들의 새 셔츠, 빳빳하고 하얀 셔츠 칼라가 부러웠다. 팔꿈치와 엉덩이가 얼마나 반짝거릴지  조회시간 내내 신경 쓰였었다. 햇빛이 쨍쨍한 운동장에서의 내 뒷모습이 자꾸 부끄러웠다.

몇 달 뒤 하복 입을 시기에 엄마는 모아둔 돈으로 하복은 새 걸로 사주셨지만 3년 내내 동복을 새 걸로 바꿔주지는 못하셨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다른 아이들의 교복도 팔꿈치와 엉덩이 부분이 반질반질해지고 있어서 내 교복의 초라함도 묻혔다. 게다가 살이 많이 쪘다던가 키 클 거 생각해서 크게 맞췄는데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맵시 나는 교복핏을 유지하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다. 덕분에 입학 후 몇 달간 내 맘속에 가득했던 반질반질한 수치심도 점점 희미해졌다.

지금도 그때의 우리 집처럼 새 교복을 사기에는 힘든 가정이 많을 테지만  다행히도 서울시와 몇몇 지역에서는 입학준비금을 지역 포인트로 제공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포인트로 교복구입이 가능하다고 보았을 때 그런 복지를 생각해 준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나처럼 반질반질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길 바라며 입학 준비금 제도가 다른 지역에도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2022년 8월의 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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