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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님 May 09. 2024

선재 업고 튀어

우리의 찬란함을 기억하며

가까운 가족에게 해결할 수 없는 큰일이 생기자 순간순간 찾아오는 걱정과 불안 때문에 반짝이던
나의 일상들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적은 돈이라도 모으고 모아 대출 끼고 겨우 우리의 집을 사고 나의 아이들은 내가 어릴 적 느꼈던 결핍과 좌절을 느끼지 않게 해 주기 위해 신경 써서 키우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바래왔던 '나만의 방'은 없지만 우리 집 전부가 나의 방이라고 생각하고 구석구석 예쁘게 가꾸며 나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현하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일이 아득하고

명랑 발랄 아줌마였던 나에게

의욕이 떨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큰 사건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만 파악했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 상태인데 자세히 알게 되면  더욱 좌절할까 봐 정작 중요한 이야기들은 뒤로 미뤄진 날들

남편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족의 곤란함이 어떻게 진행되있는지,  결국 경제적인 이야기가
나오게 되니 서로 답답하기만 하고 우리 둘이 이야기해 봐야 해결할 없는 상황에 가족을
원망하는 마음만 생기게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맘카페에 들어갔더니 새로운 드라마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있었다.

나는 범죄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2016년  '태양의 후예' 이후 로맨스 장르는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드라마구나...  하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다.

 


케이블 TV교체 사은품으로 받은 무료 쿠폰들이 쓰지도 못하고 없어지는 게 아까워 CJ ENM
한 달 무료 시청권 쿠폰을 입력 후 맘카페에서 본 그 드라마가 생각나서 1화만 봐볼까 했던
5월 1일 근로자의 날 밤


나는 새로운 사랑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킥은 음악이었다.


좋아하는 아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내리지 못하자 뛰어서 버스를 잡던 그 순간 나온

Loveholic의 Loveholic


주인공 선재가 쭉 솔이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반전을 보여줄 때 흘렀던

김형중의 그랬나 봐


남자 주인공이 친구들과 작은 공연장에서 부른

Eve의 I'll be there


드라마의 배경은 2008년이었지만 그 노래들은 2000년대 초반.

20대 초반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음악들이었다.  단 몇 초 만에 과거로 보내주는 것 같은 음악의 마법과 풋풋한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 속 장면이 나를 설레게 했다.

갑자기 부지런해진 나는 나만의 소장용 OST 카세트테이프까지 만들었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이런 것이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느꼈던 그 마음

온 우주가 내 것 같고 가만히 있어도 붕붕 뜨는 듯한 그 순수했던 과거의 마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너의 마음을 갖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저 너를 구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여 주인공 '임솔'의 마음,

너 구하고 죽는 거면 난 괜찮아, 상관없어라는 '류선재'


좋아하는 마음이 이용당하고 사랑했던 상대가 무서워지는 세상.

 안전이별을 가르쳐야 하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이라 주장하는 스토킹 범죄나  만남과 이별로 인해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강력범죄들 속에서 서로를 구원하러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이야기는 과학적으로만 판타지가 아닌 것이다.


타임슬립이 말이 안 되는지 순수한 저 마음들인지 둘 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라고 해도 믿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도 저런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연애부터 24년, 결혼 16년

생각해 보면 나와 남편도 서로를 구원하며 사랑해 왔다.


아내에게 다정한 남편, 따뜻한 아빠, 늘 나를 지지해 주는 모습에 나는 불행하게 느껴졌던 어린 시절을 구원받았다. 남편 또한 나에게 본인이 원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았고 조용하고 재미없던 자신에게 활기를 전해준 나를 통해 삶의 다채로움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이...

우리가 만들지 않았어도 겪어야 한다면

서로 구원하는 마음으로 현명하게

잘 지나가보자고 응원하고 싶다.

우리의 찬란했음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빛나게 살아보자.


힘내

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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