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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Sep 01. 2020

욕조의 위로

작지만 자리차지하는 물건


욕조를 샀다. 1인용 욕조도 참 다양하게 잘나온다.

자리 차지많이 안 하도록 높이가 긴 앉아서 쓸 수 있는 1인 욕조


‘아 이건 다리를 못 펴잖아’


자리 차지 안 하게 튜브형으로 된 원형 1인 욕조를 봤다.


‘이건 뭐 움직이면 물 다 흐르는 것 아니야?’


사실 마음엔 이미 정해뒀던 1인 욕조가 있던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다리를 펼 수 있고 낮은 형태의 1인 욕조이다.


코로나 19로 목욕탕을 못 가서 때가 한 움큼일 것 같았던 찬라 나의 위로가 될 것 같이 알맞은 형상이었다.

‘그래, 이것만 있다면 나에겐 슬픔 따윈 없을 것 같아.’


주문한 지 3일 만에 배송 완료


8평? 정도 되는 내 자취방에 들여놓기는 턱없이 자리 차지했다.

물론 이 문제는 감안하고 구매했는데 이게 뭐람

화장실에 놓으니 내 숨통을 터줄 물건이 나의 숨을 조이는 것같았다.

내 몸보다 긴 플라스틱 욕조를 겨우겨우 화장실에 놓았다.

아뿔싸......

가로 세로 폭만 재고 딱 맞게 산 것이다.

그래... 문이 안 닫혀...

인간이 이렇게 무지해요. 하루 만에 화장실 욕조는 막을 내렸다.


다행히도 우리 집엔 작은 베란다가 있다. 거의 쓰레기장같은 공간

 덜 마른빨래 냄새가 퀘퀘하게 나는 공간.

그래도 나름 꾸며봤다.


향초를 켜고 작은 화분을 놓고, 건전지 무드등과 드림캐처를 갖다 놨다.

눈앞에 분리수거한 (말이 분리수 거지 쌓아놓은) 공간을 칸막이로 겨우 막았더니 그럴싸하다.


힘들 때마다 이 곳에 와서 나를 위로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지금 매일매일이 힘들어 매일 탕을 하는데

다음 달 물세가 무섭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다. 물 부족 국가에게 효도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방법은

사용한 물은 한 번은 더 사용하는 것이다.


어차피 탕에 물을 바가지로 쏫아 넣을 때 차가운 물 3/1을 넣고 3/2는 뜨거운 물을 놓으니 한번더 사용한 욕조를 활용하면 다음 날

식은 물은 3/1 베이스가 생긴 것이었다.

점점 물 높이는 높아지고 물세도 아끼니 이처럼 좋을 수 있겠는가?


주말에 먹다 남은 와인 3/1잔과 치즈를 예쁘게 플레이팅 해 물을 뜬 바가지에 엎어놓고 먹으니

이 작은 공간은 나의 위로의 공간이 되었다.


돈도 없었던 대학시절 사회초년생에 비하면 많이 성장했다.

예전에 내가 내 방에서 욕조를 하고 와인을 마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이 집은 월세에서 겨우 전세로 바뀐 집이고, 와인은 롯데마트에 파는7,000원가량하는 와인 그리고 장소는 베란다이지만

더 먼 미래는 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멋져있겠지?


내일도 잘 부탁한다.

작지만 자리 차지하는 나의 욕조야



오늘도 내일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요.

@mingaemi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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