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개미 May 27. 2020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7-2

2013 자유선언, 캐나다 교환학생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수능'이란 내 인생에서 없을 줄 알았던 단어였는데.


'시간 참 빠르네.'


미술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답게 수능 끝나자마자 실기를 준비에 돌입했다.


대학을 지원할 당시,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 대학교 원서 접수 하향 지원 따윈 없이 미술로 유명한  TOP3 대학교를 가, 나, 다군을 지원하고 ALL KILL 당했다. (보통 하향지원 하나씩은 한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때 나의 자만함이란 ) 그리고 재수를 하게 됐고 다음 해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TMI:아직도 아쉬운 점은 평생 '수능생 할인'을 못 받아 본 것이다! 심지어 재수를 해서 두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말이다!!!!!!!)


중학교 때 꿈은 외국 대학을 가는 것이었지만 어쩌다가 보니 지방 국립대에 가게 됐다. 사실 대학 진학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거란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등용문이 열리고,

가족 품을 떠나 기숙사에 살면서 혼자만의 라이프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지방 국립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효과를 대학으로 부터 맛보게 됐다. 심지어 벚꽃 축제란 것을 가본 적도 없는 공부만하던 내가

학교에 교정을 걷기만해도 벚꽃과 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계절이란 봄이란 이런 느낌이었던가?'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그 시점에 나온 것같다.

대학교 교정엔 스멀스멀 벚꽃이 피었고, 교내 하늘은 하얗고 핑크 빛으로 물드니 밤이 되어도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것도 익숙해지는 법

어느 정도 익숙한 생활이 되니 점점 허무했다.      


허술한 수업이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시각디자인과지만 1학년이다 보니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다. 아무래도 디자인과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편견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기초가 중요해서 기초부터 배우는 것인가? (우리 모두 실기하고 왔잖아요! 디자인과도 그림 잘 그려요. 왜 그러시죠?)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린 나는 적잖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럴려고 재수를해서 대학을 온 것인가?'


사실 나의 관심사는 디자인보단 그림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디자인과에 오게 됐지만.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가니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입시 미술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도 선생님과 서양화를 하고 싶다고 상담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 우선 무난한 시각디자인과로 입학하여서 그림은 그리고 싶을 때 그리면 된다.'라는 말반 반복적으로 해주셨다. 그때 당신 그림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는지 더 이상 서양학과 대학 정보를 찾아보진 않았다.


하필 그 열정이 대학교 1학년 때 터져서 타과인 서양학과 '누드 크로키'나 '유화'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나의 '배움의 허기짐'을 그득그득 채웠다.  타과와 전공을 병행하다보니 대학교 1학년생같이 않은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바쁨의 행복’에 도취한 대학교 1학년을 보내던 중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자를 보냈었다.     


「선생님 잘 계시죠?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에게 답장이 왔다.     


개미야, 국내에만 머물지 말아. 너는 외국을 가야 해.」 

   

그때 나는 외국을 나가는 무서움과 나 자신으로 만들어낸 바쁜 스케줄에 자만함이 차 있어서


선생님 괜찮아요. 저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서양학과 수업 두 개 더 들으면서 저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후에 선생님이 답장이 없었던 것 같다.


‘허무함’을 나의 ‘바쁨’으로 채워가면 언젠간 성장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했다.

영문과 수업을 들었고, 서양학과, 한국화 수업을 들었다.


디자인과에서 나의 정체성은 혼란스러웠다. 그림 그리고 싶은데, 먹고살긴 힘들 것 같고, 디자인을 하자니 관심이 없고, 컴퓨터 또한 너무 싫고….


그런 고민으로 가득 찬 채 2학년이 되니 찾아온 ‘배움의 한계’


아무리 바쁘게 아등바등해도 몰려오는 배움의 허무함.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해외를 나가기 위해서 나는 뭘 해야 하지? 그런 마음으로 여름 방학 때 토플 공부를 시작했고, 기숙사에서 밤마다 진행하는 English cafe에 자주 갔었다. (*English cafe: 외국인 교환학생이 기숙사생을 모아 주제를 갖고 조를 나눠 영어로 대화하는 공간)

그렇게 다른 전공인 기숙사생들과 외국인들과도 쉽게 친구가 됐다. 신기한 것은 서로 영어로 대화하니 선후배 나이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고 대화하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보다 고학년인 분이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영어를 안 잊기 위해서 English cafe에 왔다고 하여 교내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동안 토플을 준비하고 시험을 봤다.


사실 대학교 3학년 땐 1년 정도 휴학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전공과 타과 수업으로 잠을 안 자고 작업하니 몸은 말이 아니게 망가져 있었기도 했고, 보통 대학교 3학년 땐 휴학을 하니깐


나도 잠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렇게 교환학생 신청 시기가 지나가고 새해가 왔다.


첫 토플 성적은 처참하여 교환학생은 휴학 후 토플 시험성적을 더 높이고 지원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2월쯤 학교 언어 교육원 사이트에 ‘캐나다 교환학생 추가 모집’ 공고가 떴었다.      


헉…!



나의 토플 점수는 하찮았지만 ‘추가 모집’에 커트라인보다 1점 높은 점수를 내가 갖고 있었다.

갑자기 재수할 때 허리가 아파서 자주 갔던 통증 치료원의 원장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


그때 당시 점수가 어떻든 이루는 바로 가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래, 더 좋은 점수가 나와 나중에 지원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커트라인 점수일 때 지원하는 것도

괜찮은 시도야. 모로 가도 자유가 있고 세상이 넓은 해외인 캐나다로 가면 되는 거잖아?’     

캐나다 벤쿠버1
캐나다 벤쿠버2

몇 주 후,

[캐나다 교환학생 추가 모집 합격자]

리스트

.

.

.

개미     


캐나다는 미국 위에 붙은 나라 정도로만 알았던 내가 그렇게 캐나다 교환학생으로 뽑혔다.      


기쁜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 싶었으나 사실 교환학생 지원은 부모님 몰래 진행했다.

그 이유인즉슨, 교환학생 지원한다고 먼저 선전 포고했으면 혼자 해외로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내가 도전하기도 전에 말렸을 것이다. 시작 전의 반대는 나의 포부를 꺾었으면 나도 부모님 말씀에 납득당하고 사기가 꺾여 지원 안 했을 것이다. 아예 그러한 시나리오를 없애

고자 나의 자유를 향한 선전포고는 사실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고민 끝에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전달했다.

그것도 전화로.



“엄마 아빠! 저 캐나다 교환학생 합격했어요!”

“뭐? 그거 사기 아니야? 기관 잘 알아봤어?”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학비+비행기+홈스테이 비용도 지원해줘요!”

“갑자기 캐나다라니…. 전화 끊고 잠시 가족끼리 상의하고 다시 연락할게.”



몇 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그래, 열심히 준비 잘했다. 캐나다 가는 것 준비하도록 해. 사실 엄마는 반대했어. 캐나다에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아빠가 딸을 좀 더 넓은 세상에 놓아주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셔서 엄마도 마음 바꾼 거야.”     


그렇다. 그렇게 난 부모님께 동의를 얻었다!

이제 자유를 향한 나의 갈망은 미칠 듯이 듯이 터질 예정이다.  



그렇게 캐나다는 나에게 다가왔다.






오늘도 내일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요.

@mingaemi_b


작가의 이전글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