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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Feb 16. 2020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2

1부_최대한 빨리


1부_최대한 빨리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디자이너로서 제일 힘들 때는 시간이 촉박한데 최고의 작업물을 만들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았을 때다. 클라이언트들은 디자이너라면 당연 빨리 

작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상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라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디자인이란 영감을 얻는 과정도 필요하고, 알맞은 콘셉트도 정해야 하고 그러는

동안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어떤 컨셉을 원하세요? 컬러라든지…….”

“그냥, 최대한 빨리요”


멋진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던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이다. 

원하는 방향성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이럴려고 디자인을 시작한 건가….’ 하면서 자괴감이 몰려온다.


내가 살아온 짧지만 길었던 29살의 삶이 스쳐지나간다.

어린 패기로 대학생활 외에도 디자인 공모전, 디자인 대회활동, 그림 등으로 

꿈을 그려왔던 그런

내가 나이길 바랬던 나날들,


그 순간이 모여 만들어진것은 현재 나의 공간은 1,200mm.

사무실 내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지.’

그 짧은 순간 놀랍게도 내 인생이 스쳤다.

꿈과 현실이 겹쳐지는 현상이랄까


“가능하신가요?” 그 말이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왔다.

“네…. 가능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복종하는 투의 말로 대답을 하고 급히 작업에 들어간다.

짧은 시간동안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려면 근무 외 시간을 투자하여 작업을 해야했다. 

그 이름은 ‘야근’. 저녁식사 시간도 아까워서 저녁은 건너뛰고 모니터 작업으로 뛰어든다. 

사실 그 시간을 아껴서 빨리 집에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일을 ‘최대한 빨리’완성하고자 한다.


_메일

1차 디자인 시안 전달드립니다. 피드백 금일 오후까지 전달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메일을 보낸 후, 피드백 오기까지 2일

그리고 오는 답신


_메일

타이틀이 조금 가독성이 떨어져보이네요. 수정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문구 추가 부탁드립니다. 금일 오후까지 수정파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수정사항 전달 해줄거면 먼저 타이틀과 메인 컬러 좀 전달해주지….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잡아봐야하네. 그리고 피드백은 이틀동안 주지도 않았으면서 

왜 수정은 반나절만에 끝내야하는 거야?’

이러한 상황에 화가나지만 이 디자인을 끝나기만 바라며 진행한다. 

그렇다. 이미 그런 과정에서 나의 작업물에대한 애정은 사라진다. 


‘그래, 원하는대로 해드리지요.’


그런 과정이 반복된 후 디자인 컨펌이 완료되어 작업물 발주를 준비한다.

나는 며칠이고 작업한 디자인을 눈이 빠지게 바라봤지만 혹시나 오탈자라도 생길 것 같은 

불안감에 계속 확인해본다. 그렇게 확인하고서야 인쇄소 업체에게 메일을 보내고 

인쇄소 사장님께 전화를 건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메일로 발주서와 디자인 최종 파일 전달했어요. 

메일 확인 부탁드립니다.”

사장님은 이내 작업 완료 일자를 궁금해하신다.

“언제까지 인쇄물 입고 시켜드리면 될까요?”


“최대한 빨리요.”

.

.

.

.

헉!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몰려오는 자괴감.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 입력된 단어마냥 튀어온 단어.


내가 ‘최대한 빨리’라고 말하다니.


내가 고통받았던 말을 누군가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나또한 날 독촉하며 옥죄어왔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니….

나도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늘도 내일도 용기를 잃지않는 사람이 되어요.

@mingaemi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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