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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Feb 18. 2020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3

1부_살다가 문득, 안정감의 위험


1부_살다가 문득, 안정감의 위험



메일_급여 명세서

‘한 달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급여 명세서 송부드립니다.’


방금 도착한 메일로 일에 치였던 매일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늦은 퇴근길에 바라본 밤하늘.

나는 언제까지 오후의 하늘을 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한탄.

집에 도착하여 힘겹게 하루의 차가움을 따뜻한 물로 씻고, 노곤해진 몸을 책상에 겨우 앉혀

다음날이 안 오도록 빌며 지새운 밤.

그다음 날의 후회.


월급이 들어와 숫자가 높게 올라간 통장을 바라보며 그날들을 보상받는 듯하다.

‘그래. 그래도 돈이 좋긴 좋구나.’

마침 내일은 주말이다. 그간 바빠서 못 썼던 돈을 온 기운으로 써주겠어.

평일의 기원대로 한껏 돈을 쓸 준비를 했다. 추운 겨울이지만 얇은 코트를 입고 멋스럽게 나를 치장했다.

평일과 다르게 더더욱 커리어 우먼 느낌이 난다.

'내가 회사에서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옷이 안 예뻐서일 거야.'라는 핑계로 쇼핑몰로 향했다.

시즌 오프, 할인 배너가 이곳저곳에 부착되어있다. 이곳이 진정 천국인가?

화이트 와이셔츠, 팬츠도 필요해. 미니스커트도 귀여울 것 같은데? 하며 피팅룸을 왔다 갔다.


그렇게 나는 결국,

“10만 원입니다. 할부로 해드릴까요?”

“일시불이요.”

고민도 없이 순식간에 옷 몇 벌에 10만 원을 긁었다.


월급은 마치 내 돈 같지 않다. 누군가에게 맡긴 돈을 한 번에 받은 느낌이라 돈 쓸 때 죄책감이란 없다.

어차피 다음 달에 또 들어올 돈인데 뭐~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혼자만의 쇼핑을 끝내고 저녁엔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룸메이트를 만나기로 했다.

그 룸메이트였던 동생은 나보다 1살 어린 친구이다. 임용고시를 보고 1차 발표 전에 오랜만에

세상 구경하기 위해서 지방에서 상경했다. 서울 올라온다고 한껏 멋을 내고 높은 구두를 신고 온

동생은 서울 도착한지도 얼마 안 되었지만 벌써 지쳐 보였다.


“서울 올라오느라 고생했어. 1년 동안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저녁은 내가 살게.

먹고 싶은 것 먹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당당함은 회사원의 월급에서 오는 것이다.

동생은 서울에서 유명한 부추 소곱창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만약 내가

취준생 때렸거나 대학생 때였다면 손을 발발 떨고 더 싼 음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월급은 받으니, 주말엔 비싸고 맛있는 것 먹어도 괜찮아. 소곱창쯤이야.’ 마음이 넓어졌다.

역시 마음의 평화와 아량은 두둑한 지갑에서 나오는 것인가?

친구와 난 소곱창을 먹으며 청하를 준비한다.

“여기 청하 한 병 추가할게요.”

우리는 소곱창을 ‘지글지글’ 구우며 대학생 때 이야기로 추억의 꽃을 피웠다.


“우리 진짜 대학교 때 엄청 바쁘게 지냈는데, 너는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방학 땐 영어 공부도 하고, 영어 과외하면서 용돈도 벌었잖아.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잘 오지도 않고,

나는 타과였던 한국화 수업을 들으며 그림도 그리고 매일 과제로 밤을 지새우고,

대외활동 두 가지 하면서 취업 준비한다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했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그땐 바빴지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즐거웠잖아. 바쁜 하루를 끝나고 기숙사에 와서 같이 게임도 하고. 그러다가 옆방 사람이 우리 게임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방에 찾아도 왔었잖아! 잘 놀기도 잘 놀았지.”


그러자 동생은 “맞아요. 우리 항상 하고 싶은 것 많고 열심히 살았잖아요. 진짜 대학생활 중 그때가 제일 즐거웠어요. 열심히 하고 열심히 놀고, 근데 지금은 방에 박혀서 공부만 하는 임고 시생이 되었어요.

언니 나 1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것 같아요. 매일 독서실에서 임용고시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그랬는데

언니 만나서 너무 좋아요. 다시 그때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이렇게 언니가 밥도 사주고 언니 출세했네~! 나도 빨리 돈 벌고 싶어요. 사실 나도 다 때려치우고 회사 다닐까 했는데 이 시험을 3년간 준비하니 그럴만한 용기도 없어요. 준비하게 도와준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출세? 출세라….


그런가? 하긴 대학생 땐 500원 차이로 좀 더 저렴한 음식을 택했고, 가성비 있는 옷을 구매하고

돈 몇 푼에 벌벌 떨었었는데 말이야.

 회사 생활 4년 차 되니 그때와 다른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긴 했다.


그런데 점점 마음은 왜 허하고 텅 비는 것인지.

뭔가를 잃어가는 기분이다. 뭐지?


내 예전 모습을 알던 대학교 때 룸메이트 동생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대학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그 시절은 마치 ‘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해봤어.’였던 시절이었다.


디자인과지만 서양화, 한국화 수업을 들으면서 그림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키고,

해외에 나가고 싶어서 휴학하고 캐나다 교환학생으로도 7개월 간이란 시간도 지내보고

디자인 대외활동과 공연 대외활동 그리고 취업 준비로 방학 동안 대전 (대학교)에서 서울을 오갔다.

그땐 돈은 없었지만 바쁨 속에 풍부한 만족감이 있었다.


힘들게 번 돈으로 행복을 사는 지금의 나와 너무 달랐던  과거의 나.

현실에 안주해버린 나.

변화가 무서운 나.


문득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행복’과 ‘안정감은’이 진짜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나의 이 안정감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사라지는 거품 같은 것이야.

월급은 나를 내가 만든 상황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회사의 보상으로

나는 회사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슨 실수가 나면 ‘나 잘리는 것 아니야? 어떻게. 내 인생 이제 어떻게’

하며 불안해하고….


그것은 또 마약과 같아서 통장에 늘어나는 숫자가 나의 자유를 막고, 나를 나태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나의 인생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으로 불탔었는데….

그 열정은 회사에서만 열심히 태우고 밤늦게 집에만 오면 에너지가 갑자기

빠진 듯 내 몸은 녹아서 바닥에 붙는다.

그렇게 누워서 하는 짓이라고 해봤자 ‘남의 인스타그램 보기’ 그렇게 한 손가락으로 바쁘게

스크로바를 내리던 중 ‘하루 중 난 언제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긴 하는 건가?



그런 고민의 반복으로 드디어 숨통 트는 설날이 다가왔다.

긴 휴일을 틈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중학교 친구인 수진이를 만났다.

우린 만나면 항상 꿈과 그림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수진이는 나에게

“너 기억나? 네가 절대로 회사원이 되지 말자고”

“내가?”

“우린 회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우리만의 것이 되자고.”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렇게 당차게 말했었을 나였을 텐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한조차 잊어버렸다.

회사원이 아니었다면 내 꿈은 뭐였을까?


꿈이 뭔지도 모르고 열심히만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네….



오늘도 내일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요.

@mingaemi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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