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동안 난 자기소개서 스터디를 참여하기 위해,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 2시간 스터디를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는 시간(왕복 4시간)과 교통비는 너무 아깝고,
서울이 집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서울이 공부와 문명의 밀집 지역인 것을. 스터디에 집중해야지. 일주일에 1번 총 4주간 완벽한 자소서를 완성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취업 준비생은 7명.
수업 방식은 이러했다. 각자 준비한 자소서를 읽고 서로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25살에 자기소개서 스터디에서 만났던 동갑 친구의 자기소개서가 기억난다.
우리는 각자 자기소개서를 읽고 장&단점 피드백과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이제 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친구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해온 차근히 자기소개서를 읽어나갔다.
사진 출처: menentk.tumblr.com
“(앞 내용 생략) 저의 10대는 회색빛이었습니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 공부만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즐거운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20대가 되면 무지갯빛으로 살고 싶어서 스무 살이 되면, 무지개색 순서대로 일기장을 구매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살은 빨간빛, 21살은 주황빛, 22살은 노란빛…25살은 남색입니다. 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보라색일 26살에 이 회사와 함께 20대의 무지갯빛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알록달록한 자기소개서를 듣자마자 우리는 모두 “정말요? 다이어리를 무지개 색깔
순서대로 하고 있나요?” 질문했다.
“네”
그녀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때 당시 우리는 25살이었다. ‘25살은 20대 중반으로 이제 꺾일 나이지.’라고들 많이 이야기를 들어 그런지. 25살이란 우리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던 무거운 숫자였다. 사회 나왔다면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는 나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도 무서운 나이.
하지만 29살을 앞둔 지금의 나는 25살이란 시도하기 너무 좋은 나이였다고 그때의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다.
25살인 우리에겐 '아직 늦지 않았다.'다독여 주고 싶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러긴 쉽진 않다.
먼 미래에 봤을 때 29살도 젊은 나이일 텐데….
사실 내 인생에 서른 살 이후의 삶은 없었다. “내가 서른 살이 되는 날이 올까?” 막연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20대 이후의 삶의 계획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나의 10대는 대학을 가기 위해 목표를 세웠고, 취업을 준비하는 20대가 되었으니깐 계획한 대로 잘 살아왔다. 근데 그게 끝이다.
아뿔싸. 취업 후의 삶을 생각하진 않았었다.
가끔은 ‘내가 서른 살에도 살아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왔다. 그 이후의 삶을 그려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진짜 서른 살인 내가 없을까 봐 문득 두려워졌다.
그래서든 생각
‘만약 내가 서른 살에 죽는다면 제일 후회할 것 같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23살 캐나다 교환학생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꼭 캐나다를 갈 거라고 했지만 돈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7년간 다시 떠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후회할 것 같다.
30살이 되기 전엔 꼭 다시 떠나야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자기소개서 수업을 같이 들었던 20대의 무지갯빛을 꿈꾸었던 그녀는 어떤 29세를 보내게 될까? 나처럼 후회와 이루지 못한 꿈들로 마음이 급해졌을까? 30대는 어떤 색으로 살고 싶을까?
나는 어떤 빛깔로 살아가게 될까?
그런 고민을 생각하던 도중 2019년 00시 00분 새해가 찾아왔다.
TV 속 아나운서: 2019년 제야의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18년은 보내고 새
로운 기해년 2019년이 왔습니다. 행복한 새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들 행복한 표정과 얼굴로 새해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지만
(다들 정말 행복한 것일까? 이젠 새해라고 예쁜 다이어리를 사거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