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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네마 Apr 10. 2019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여우와 신포도



어느날 포도나무에 달린 탐스러운 포도를 발견한 여우

하지만 수차례 펄쩍 뛰어봤음에도 닿을 수 없게되자

여우는 발걸음을 돌리며 한마디를 던진다.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그 말을 뱉든 뱉지않든 달라질 일은 없다.

포도를 무시한다고해서 닿지않던 나뭇가지에 손이 닿게될리도 없다.

그런데도 대체 왜 여우는 포도를 깎아내려야만 했을까.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린시절,

처음으로 저 우화를 접했을 때 나는 여우를 비웃었다.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여우도 처음엔 닿을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몇번의 점프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닿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하기 위해,

그토록 원하던 포도를 원치않는다고 깎아내려야했을 것이다.


여우 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가 않다.

때로는 외면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기도하다.


특히 한두번의 실패경험이 있거나 그러한 가능성이 높을 때

이는 더욱 어려워진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고 인정해버리면

도전했을 때에는 '그렇게 원하던 것을 놓쳐버렸다'는 실패에 대한 부담과 결과를 모조리 끌어안아야하고

도전하지 않았을 때에는 '시도조차 못해봤다'는 자괴감을 감당해내야한다.


그렇기때문에 여우가 포도를 신포도로 만든것도, 우리가 많은 일들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려 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여우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포도의 가치를 훼손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비난할만큼

포도(원하는 것)의 가치가 자존심의 가치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우리는 과연 확신할 수 있을까?



정답은?


각자에게 달려있다.


내경우 신포도가 아니라 독이 든 포도라고 해도 달려들어보는 편이다.

옆에있는 돌덩이 대여섯개라도 끌고와서 위에 올라서보고

지나가는 다른 동물들이라도 데려와서 도움닫기라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정말로 독이 들었을 때도 종종 있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갈 데까진 가봐야하는 류의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조차도

"왜 넌 그런걸 좋아하니? 왜 그렇게까지 달려들고있니?"

라는 의문을 누군가 던질 때면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도 실상 뿌리채 흔들리기도 한다.

포도나무고 뭐고 다 베어버리고 좋아한 적 없었다고 말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강하기 때문에 돌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힘겹게 힘겹게 지켜갈 뿐이다.


그래. 그런의미에서

달려들지 않는 사람들이 나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포도 대신 지켜야 할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말로 시어버렸을 수도 있는 포도를 향해 괜한 기력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이 마음 쏟을 수 있는 다른 나무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그냥

다른 길을 가는 이들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포도를 향해 미친듯이 뛰어보든

그 포도나무를 두고 발걸음을 옮겨보든

각자의 가치관대로 선택하고,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믿고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P.S.


다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좋아하는 마음'까지는 인정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긴하다.


"저 포도 막상 먹어보면 별로일거야. 시어버렸을 수도 있어."

라고 생각하기보단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포도였고, 내가 한때 되게 갖고싶었던 것인데, 닿지 않았어. 그치만 나는 지금 내가 일구고있는 이 토마토밭 또한 내 길이라고 생각해. 작은 토마토가 열리더라도 괜찮아. 이건 나의 소중한 토마토야."


라고 생각하는 편이 아무래도 훨씬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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