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사람들을 아껴 만났다. 대단하다며 유난 떠는 이들에게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니라고 수줍은 척 손사래 치는 일도 피곤했고, 무슨 비자로 얼마간의 기간 동안 뭘 하면서 지낼 건지 팩트 그대로만 나열했을 때, 듣는 이들이 멋대로 추측하게끔 내버려두는 건 그거대로 불편했고. 그렇다면 뭐 때문에 가는 건지 내 마음 그대로를 설명해낼 자신도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사람들만 골라 만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또 이리저리 끌려 웬만한 이들은 다 보고 가게 되었다. 그중 몇 명은 에잇 괜히 만났다, 또 몇 명은 역시 보길 잘했어, 나머지는 뭐 그냥저냥. 그래도 막상 얼굴을 보니 반가워서 할만한 얘기들을 재잘대었고, 들을만한 말들을 들었다. 대개 그저 나를 아끼는 이들이 으레 해줄 수 있는 말들이겠거니 싶어 적당히 흘려들었는데, 그러던 중 김 모 오빠를 만났다.
알게 된지 십 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결혼한 지 육 년 차가 된 딩크족. 이제 막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는 그의 말을 듣기 전부터 나는 그의 편안한 표정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만나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와 내가 속해있는 무리 중에서도 단 둘이 만난 적은 처음일 정도로 개인적인 관계가 그렇게 끈끈한 사이는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날 이상하게 속마음을 줄줄이 털어놓게 되었다. 아마 솔직함 속에도 늘 배려를 감춰두는 그의 좋은 면모를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두어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뱉었다.
"나는 너처럼 살라면 못 살 거 같은데, 근데 야. 솔직히 멋지긴 하다."
돌연 머리가 띵 해졌다. 멋지다는 말이 아닌 앞의 말의 울림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내가 그토록 도망치려했던 이유도 어쩌면 이것이었을까.
도망치기. 그래. 조금이나마 솔직해보자면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언젠가 한 번쯤 가까운 친구에게 '더 도망칠 곳이 없을 정도로 배수진을 치고 싶다. 그제야 내 선택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말이 씨가 된 것인지(젠장)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그것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회사를 떠난 뒤에도 '언제든 내가 원한다면 이전의 안정적인 삶으로 돌아가면 돼'라고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떠도는 동안 그것마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나는 깨닫고 있었다.
배수진을 치고 끝이 무딘 낡은 창 하나 들고 서 있는데 파도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발목에 찰랑거려 닿았다.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이러다 정말 물에 빠지면 어떡하지? 검은 바다에 삼켜져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분명 자신 있었는데, 점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함부로 입방정을 떨었던 대가를 혹독히 받는 건지, 그 뒤 감당해야 할 모든 상황과 감정들은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다시 돌아가면 되지 않겠냐고 누군가(이를테면 엄마)는 말하기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어 버린 이후, 아무거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거나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더 쉽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한 채 결정만 먼저 질러버렸는데, 그런 내게 출국 직전 만난 그의 한마디가 실마리를 준 것이다.
앞 뒤를 바꾸어 다시 곱씹어보았다.
'네가 멋지긴 하지만 너처럼은 못 살 것 같다.'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인 여유, 안정적인 직장, 평생을 약속한 배우자. 이 모든 것들을 가진 이들이 내게도 역시 멋지고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이 가진 것의 가치 또는 그들의 삶 자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모든 찬란한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아직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내 것 또한 어딘가에 마련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찾아봐야 했다.
그래서 나는 스물아홉의 거의 절반을 흘려보내며, 다시 한번 이 곳, 파리로 왔다.
"나도 오빠가 멋지긴 한데 오빠처럼 살고 싶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