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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Oct 24. 2022

우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내 주변을 보면,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참 많던데, 나는 왜 비를 이렇게나 싫어하는 걸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가난하던 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5자매 중에 넷째인 나는 비가 내리는 아침이면, 학교에 쓰고 갈 우산이 없었다. 낡은 우산이라도 있으면 쓰고 가건만, 그마저도 없으니 우산 없이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학교에 가야만 했다. 나는 비는 아침이 아니라, 오후에만 내리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도 했었다. 학교 끝나고 갑자기 내린 비의 경우, 엄마가 학교로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처럼 아무도 오지 않는 집도 꽤 많이 있었기에,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집에 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내려버리면,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고 학교에 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보다 나를 더 차갑고 비참하게 만들고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 오는 날 사용할 우산도 없을 만큼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들키는 것 같아서 정말로 싫었던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시련을 겪게 되면,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고 곧 무너질 것만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나는 그전보다 오히려 더 단단해져 있고, 성숙해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우산이 없어서 맞았던 그 비와, 바람과 눈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더 건강해졌고, 더 강해진 것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이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울 뿐이다.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기에, 나는 우리 아이들의 우산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곧 우산이 되어, 비나 눈에 젖지 않고 바람도 막아주며 보호해 주는 것만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부모는 아이들의 ‘우산’이 아닌 그저 ‘집’이 되어 주면 된다.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어도, 집에 오면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집이 되어 주면 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내 아이들을 나무가 아닌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해 버릴 수는 없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온실에 작은 구멍을 하나 내고자 한다. 상처 하나 없이 예쁘기만 한 온실 속의 화초는 온실이 사라지는 그 순간 생존에 실패한다. 작은 비바람을 이겨낸 사람만이 큰 비바람도 이겨 낼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의 이 모든 시련과 아픔들은 나로 하여금 꽃을 피우게 하고, 결국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식물도 동물도 모두 생존할 수 없으니, 이 비는 고마운 비다. 

강한 비바람에도 이겨낼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고마운 비,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고마운 비. 


우리 삶에 없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꼭 필요한 고마운 비라고 생각하고 다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어린 시절부터 나를 힘들게만 했던 그 비는 어느새 사라지고, 비 오는 날이 꽤 분위기 있고 운치 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차디 차가운 가을비가, 따뜻하고 시원한 여름비로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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