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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Nov 09. 2022

동물실험연구원으로서의 삶_그 시작

동물실험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실험동물’ 수업 시간에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는 생각에 실습 시간이면 항상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다른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그저 실눈을 살짝 뜬 상태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바라보면서도, 나는 절대로 이 일 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 12월에 학과 교수님께서 OO 생명과학연구소에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지원서류를 작성 후 제출하라는 공지를 듣고 갑자기 지원한 것으로 나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여기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을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의 대부분이 취업을 한 상황이라 취업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에, 그리고 지원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그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그냥 지원했었던 것 같다.     


최종 합격 후, 첫 출근을 했을 때는 첫 출근에 대한 설렘과 함께, 수술복과 실험 가운을 입은 내 겉모습이 꼭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연구원처럼 멋져 보이기까지 해서 스스로는 꽤 뿌듯하고 만족스러웠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 잠깐 들린 편의점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자기 친구가 지금 맹장 수술을 해서 이 병원에 입원 했는데, 병실에 무얼 사 가면 좋을지? 지금 무얼 먹을 수 있는지? 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도 실제로 내가 의사가 된 것도 아니면서, 지금은 이해할 수도 없고 오히려 이 생각만으로도 부끄러워 지금까지도 얼굴이 뜨끈 거릴 정도이지만, 그 당시에는 의사 선생님으로 보이는 상황이 은근히 기분 좋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육실과 실험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매일매일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오늘까지만 꾹 참고 근무하고,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꼭 그만두겠다고 말하자’라고 매일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부터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어 운영됨으로 인해, 동물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동물실험을 진행할 수가 있다. 내가 첫 출근을 한 해는 2000년으로 그 당시에는 동물실험과 관련해서 어떠한 제약이나 규제가 없던 시절로 그야말로 ‘동물실험을 하는 사람들의 천국’ 그 자체였다.     


그날도 출근하여 마우스 케이지를 새것으로 교환해 주면서 ‘안녕~나 이제 그만 둘 거야. 너희 케이지 교환해 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일 수도 있어. 그러니 나 없이도 잘 지내. 잘 견뎌야 해’ 라고 말하는데, 나 없이도 잘 지내라고? 이들의 삶이 어떠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내가 그만둔다면, 아마 나는 그날부터 이 모습을 직접 보고 겪지 않아도 되니 분명히 나의 맘은 다시 예전처럼 편안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내가 그만두어도 실험동물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많은 실험동물의 희생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힘들고 속상해도 나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여기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만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편안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덜 고통스러울지? 덜 불편하게 할 수 있을지? 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동물복지란 반려동물, 동물원 동물, 유기동물 만을 위해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진정한 동물복지는 이처럼 가장 열악한 곳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 나 힘들다고 그냥 도망가 버리는 비겁자가 되지는 말자.    

 

이 일을 그만두고 하루빨리 도망가 버리겠다는 마음은 이러한 생각들과 함께 버려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 한 구석에 깊게 뿌리내린 채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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