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6 Tai Verdes - A-O-K
지난가을 한 휴게소에서의 일이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간이 테라스에 앉아서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있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머문 곳은 주차장 맨 끝 칸에 주차한 회색 차 한 대.
반듯한 네모칸을 제대로 무시하며 금 바깥으로 훌쩍 벗어나 옆 차와의 간격을 제대로 벌려 주차해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끝 칸이라지만 번듯하게 주차칸을 그어둔 것이 무색하게 저렇게 댄단 말이야? 뭐가 그렇게 급했다니? 한 번만 더 뺐다가 넣었으면 될 걸.'
일렁이는 괘씸함이 궁금증으로 변할 때쯤 문제의 회색 차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응?'
총 네 명의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은 아주 걷기가 힘들어 보이시는 할아버님이었다. 할아버님을 양 옆으로 부축해 둘이 더 걸었고 나머지 한 명 (주차한 사람으로 보이는 아마도 아들)은 좀 더 먼저 성큼성큼 뛰어가 보조석 뒷자리의 차 문을 활짝 열었다.
그렇다. 보조석 뒷자리에는 할아버님이 타고 오셨고, 운전자는 할아버님이 편히 내렸다 타실 것을 배려하여 마침 주차 줄의 맨 끝이니 네모 칸쯤이야 시원하게 무시하고 주차해두어도 다른 어떤 차도 피해 보는 상황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리 과감하게 네모칸을 벗어난 것이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과 휴게소 주차 상황이 파악이 되는 운전 경험이 그 운전자에게 그러한 결단을 내리게 했던 거다. (어쩌면 운전을 오래 해왔거나 뒷좌석에 소중한 사람을 태우는 사람들이라면 원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운전할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마음에 쿵 소리가 울리는 광경이었다.)
그래 원래 주차장에서 주차는 으레 네모칸에 반듯하게 해 두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에서의 예의니까.
그러나 상황에 따라 그 네모칸은 이렇게 무시되는 것이 훨씬 좋을 때가 있다.
살다 보니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선이 그어져 있다.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랐던 나에게는 교과서가 있었고, 입학하고 졸업을 해야 할 학교라는 게 존재했고 돈을 벌어야 하니 가야 할 직장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선들이 있어서 고맙기도 하다. 덕분에 큰 혼란이 없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마음에서 헷갈릴 때는 세상의 선을 한 번 찾아보고 그 범위에서 나를 맞추면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그 범위에 벗어나 있는 게 늘 무서웠지.
그런 내게 휴게소에서의 경험은 '언제까지고 내가 배운 선 안에서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봐'라는 두려움이 나를 자극했던 것 같다.
"오빠 나는 내가 요즘 가장 두려운 건 뭐냐면 나무에게서 나무만 보일까 봐야."
"?"
"어떤 사람들은 나무를 보면서 초록이 주는 안정감을 생각하기도 하고 단단한 뿌리를 느리 끼기도 하고 열매를 맺는 예쁨을 보기도 하고 또 맺은 열매를 땅으로 툭하고 보내는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끔은 태양을 제대로 만나는 맨 위의 나뭇잎과, 맨 아랫가지에 걸려서 그늘에서만 자라는 나뭇잎의 차별적 위치 같은 것도 봐. 제대로 바라보는 눈은 생각이 되어 사람을 깨어있게 만드는 것 같고. 그렇게 느껴지는 여러 가지 것들로 본인의 기준을 만들어서 기꺼이 배워왔던 것을 깨부수기도 하는데, 나는 여전히 나무는 그냥 나무구나 하고 말아 버리는 사람 같아서."
도태되면 어쩌나를 걱정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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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의 주디입니다.
오늘 주제는 언젠가 글로 기록해두고 싶었던 지난날의 하루인데요. 굳이 어울리는 노래를 애써 찾자니 어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제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멜로디가 좋아서 들을 때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노래 한 곡을 들고 왔어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좀 움츠려있던 가슴이 살짝 펴지고 약간의 신남과 여유로움이 생기는 기분이 들거든요. Tai Verdes의 A-O-K입니다. A-O-K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리듬을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오늘의 피로는 이 노래로 깨 보는 걸로!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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