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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Nov 28. 2021

지금 여기 나의 손을 잡는 방법

나의 아로마(AROMA) 이야기


"지금 내 마음을 이곳으로, 이 자리로 돌려둘게요."


요가 수련을 하기 전 종종 선생님은 어디론가 흘러가 있는 나의 생각을 지금 이 자리로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여차 하는 순간에 오늘 내내 마음속을 빙빙 맴돌던 다른 생각들이 배신하지 말라며 자꾸 불러댄다. 당장 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바람에 나는 곧장 두려움에 그 생각들을 따라나선다.


다시금 "내 마음이 자꾸 다른 생각들을 따라 움직인다면 알아차리고 데려올게요."라는 선생님의 가이드 목소리가 들린다. 그때가 되어서야 아차차! 하고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온다. 수련원의 희미한 불빛이 다시 느껴진다. 어렵지만 언젠가 묵직하게 설명해보고 싶은 그런 경험이다.


아무튼 이런 나의 복작거림을 잡는 데에 큰 기여를 하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아로마 오일.

아로마(Aroma)는 사전적 의미로 "방향, 향기, 품격, 기품, 묘취"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어원은 그리스어로 향기 나는 풀을 뜻하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발전하여 향기, 아로마 오일 등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덧붙여서 오늘날 잘 알려진 아로마테라피는 Arome(향)+therapy(치유)의 합성어로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를 이용하여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자연 치유요법을 의미한다. 그 창시자는 영국의 에드워드 바흐라는 의사로 알려져 있는데 자연이 가지고 있는 향으로 치료하는 것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바흐는 식물과 꽃에서 주는 에센스로 감정 치료하는 것을 연구했다고 한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학창 시절의 하루에  내가 '향수는 왠지 허세 같아.'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친구가 그 당시 남자 친구의 생일선물을 고른다고 우리에게 추천을 해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한 친구가 향수는 어때? 라고 이야기하자 뭣도 모르고 약간 허세 느낌 나.라고 했던 단편이 남아있다.

지금에서야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향수는 어른의 아이템이고 나는 그 당시 학생 때는 화장 안 하는 민낯이 제일 빛나는 시기라고 생각했던 어리고 틀에 박힌 꼰대였기에 그런 우리가 벌써 향수를 생각한다는 건 좀 허세라고 여겼던 것 같다. (어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오히려 뭣도 모르는 허세를 부렸다.)


지금은? 당연히 아니다. 어느 순간 향이란 그 사람을, 그 시간을, 그 공간을 기억하는 특별한 매개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향에 대한 생각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동남아시아의 어느 공항에 도착해 문을 열고 탁 나섰을 때의 그 습한- 바로 여러분이 지금 나의 글에서 '동남아시아’ 라는 단어를 봤을 때부터 아~~~~ 하며 코 끝에 찾아온 것 같이 느껴지는 그 습한 냄새-그리울 사람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후각그리고 향의 힘이 아닌가 싶다.

무튼 요기니가 된 나를 향수보다 더 자극해 왔던 것은 자연의 에센셜이 그대로 담긴 아로마 오일들이었다.


나는 자주 과거의 시간 또는 미래의 시간에 사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아니라고 말 못하지만...

‘내가 이랬던 사람인데 말이야.' 라며 과거의 영광에 오랜 시간 심취하는 것은 취미요 이미 벌어진 잘못이 자꾸 생각나서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고 길게 자책하는 것은 내 특기다.


어쩌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눈을 감고 '미래에 되고 싶은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창조해두고는 미래(에 있었으면 싶은) 시간을 멋대로 휘젓다가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현재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시간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내 몸뚱이는 현재에 있는데 그 외의 나머지는 현재에 없었던 나는 아로마를 통해 몸과 마음을 지금의 시간에 살게 했다.


나의 아로마들. 마블 무늬의 향 트레이는 지난 여름 직접 만들었지롱.


아침에는 알싸한 향이 매력적인 페퍼민트 또는 유칼립투스 오일을 손에 비벼 코 끝에 가져간 후 코로 길게 들이마셔본다. 몇 차례 허브향의 단순한 공기가 나의 몸속에서 돌고나면 눈을 뜬 지금 나의 모습이 선명히 보일 때가 있다. 좀 있으면 시작해야 할 출근 준비에 내 정신이 가있는 게 아니라 '눈을 뜬 지금 나의 모습에 머무는 느낌' 별거 아니여 보여도 굉장히 즐거운 경험일 거라 확신한다.


요가 수련을 갈 때는 그때그때 기분에 맞게 선택한다. 좋아하는 브랜드에는 차크라 스프레이 라인이 있는데 사람은 특정 기운이 부족할 때 자연스레 끌리는 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그때 손길이 가는 대로 마스크에 몇 번 분사하고 쓰면 수련 가기 귀찮아했던 나를 어허! 하며 수련원으로 쓱 밀어주는 힘이 나온다.


기운이 없는 날에는 오렌지나 자몽의 상큼한 향이 베이스가 되는 오일들을 사용한다. 호불호가 잘 없는 과일향이라 친구들을 만날 때 자주 챙겨가서는 그들의 손에 한 두 방울 떨어뜨려 주면 인기 만점. 서로서로 와 이 향기 너무 좋다고 외치다 보면 그 시간이 정말 좋아진다.


자기 전에는 라벤더 향이 첨가된 오일을 많이 사용한다. 요즘 침대 스프레이가 참 많이 나왔는데 잘 보면 라벤더 향이 포함된 제품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효과가 있다. 또는 개인적으로는 플로럴 계열 중에 장미향을 참 좋아하는데 은은한 장미향을 사용하면 순간 침구에 닿아있는 포근한 살결의 온기가 섬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포근하다는 지금의 느낌을 알아차린다.


출근할 때는? 늘 내 마음이다. 다만 아로마 오일 한 두 개씩은 꼭 챙겨 가는 편이다. 잠자리가 자주 바뀌고 시차가 들락날락하는 나의 시공간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TMI 살짝 덧붙이면 내일은 장거리 비행을 가는 날이기 때문에 도착 후 피로를 풀어 줄 수 있는 오일을 챙겨뒀다. 유칼립투스, 계피, 티트리 성분이 들어간 이뮨 오일인데 면역력 강화와 감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요즘 시기에 딱 필요한 아로마.


아로마를 통해 나는 현재의 순간에 향기를 한 방울 톡 떨어뜨려 그 순간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마치 가끔 영상을 만들 때 흑백의 멈춰 있는 정지 화면을 톡 건드리면 갑자기 컬러가 확 입혀지며 생생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효과와 동급이랄까.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그리는 시간도 살면서 분명히 필요하겠지만 일단 현재 나의 시간을 부정하지 않을 것.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만날 것, 그리고 같이 힘을 합쳐보자고 손 내밀 것.


어차피 남들은 몰라도 나는 나를 어디에 쓱 치워 둘 수도 없잖아. 같이 가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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