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조건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면 첫 번째로 손이 멈칫하는 곳은 ‘취미(그리고 특기)란’을 만났을 때다.
이름, 나이, 성별, 주민번호 또는 주소, 연락처, 학력, 경력. 별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작성할 수 있는 인적사항란을 넘어서면 보통 다음으로 마주하는 취미.
취미와 특기를 소개하기란 내게는 늘 어려운 일이었다. 특기야 뭐 내가 어떤 것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치를 좀 엄격하게 두는 편이라고 변명하거나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다는 솔직함이라도 부려볼 수 있는데 취미를 못 찾는다는 건 좀 허무한 마음을 동반하는 실망에 가까웠다.
사전 뜻풀이 그대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는 건 아마도 즐긴다는 것에도 나름의 조건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국민의 취미라는 영화감상과 음악 감상을 나도 한 때는 여러 번 써먹은 적이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두 가지 이유로 마음에 걸렸다. 하나는 왠지 나의 아이덴티티가 없어 보인다는 속상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말 취미라면 영화 제목만 들어도 아 그 영화는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댈 줄 알아야 하거나, 어떤 노래의 전주만 나와도 아하~ 하며 가사를 흥얼거릴 줄 알아야 할 것만 같은데 나의 경우에는 그냥 보고 싶은 영화를 즐겁게 보고, 철마다 좋아하는 몇몇 곡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취미에도 일정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행위의 지속성이라던가, 어느 정도의 지식이라던가, 좋아하는 일이니 진심으로 즐거워만 해야 한다거나 하는.
세상에 취미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머리 한쪽을 우지끈 아프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니. 그래서 지난가을 요가원을 찾았을 땐 마음 한 켠에 난 이것을 취미로 만들고 말 거라는 웃기지도 않는 다짐부터 하고 들어갔더랬다.
단,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도 기존에 의존하고 있던 취미의 조건들을 지우고 새로운 조건들을 내세웠다. 우선 꾸준함의 기준을 ‘매일’이나 ‘주 몇 회’라는 숫자에 걸어두지 않기로 했다. 다만 중단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요가가 늘 내 일상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을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요가를 쉬고 싶을 땐 그냥 쉬어가는 날도 아주 많았다. 푹 쉬어주니 마음이 버겁지 않아서 어떤 날들은 매일을 연속해서 하게 되기도 하고, 30분을 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1시간 30분을 하는 날도 생겼다.
어느 정도의 지식이라는 것은 ‘이론’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갇히지 않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운영하는 원장 선생님의 분위기만큼이나 정갈하다. 그 공간이 너무 좋아 그곳의 구석구석을 오롯이 관찰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요가원을 추천할 때에 나만의 기준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요가 선생님들의 요가웨어를 구경하다 보니 꼭 달라붙는 레깅스 형태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수련할 때 매일 나는 향이 무엇인지를 따라가다 보니 이제는 아로마 향 몇 가지를 스스로 활용할 줄도 알게 되었다.
본업이 고되어 반복되는 일상에 한 풀 꺾인 날에는 요가를 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음에도 취미는 24시간 365일 늘상 즐거워야 한다는 이상한 기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강박이었다.
그렇게 1년이 다 와가니 어느 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물구나무를 서고, 아직도 거의 안 되는 다리 찢기에는 상처 받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나의 취미는 요가야!”라고 말하고 다니는 요즘의 나.
나도 모르는 새 성큼 다가온 선선한 초가을 바람만큼이나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