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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Aug 17. 2021

요가복 한 벌의 힘

요가가 안될 땐 요가복 앞으로

"이거 봐 나 쇼핑몰에 갔다가 룰루XX에서 가방 하나 사 왔어. 요가 갈 때도 그렇고 휘뚜루마뚜루 들기 딱 좋은 거 같아. 10분 거리니까 다녀와"


"오 심플하다! 나는 가방은 괜찮은데 레깅스를 하나 사고 싶긴 해"


동기 언니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비행을 다시 시작하며 체력관리 겸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아쉬탕가 요가에 도전하고 있는 언니였다. 그렇게 우리는 두 시간을 우리의 요가복 취향에 대해 떠들었다. 요즘의 요가복은 몸매를 드러나게 하는 딱 달라붙는 레깅스뿐만 아니라 조거 형태나 나팔바지, 와이드 팬츠 등 좀 더 편안해지고 다양하게 디자인 되어있다. 확실히 '요가는 레깅스다' 라는 고정관념에 벗어나서(아니 어쩌면 그런 고정관념조차 애초부터 초보자인 나에게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가를 하는 개월 수가 늘어나듯 내 바지의 품도 그만큼 넓어지고 찰랑거리게 되었다. 요가복의 소재를 제일 중요시하는 언니에게 내가 참 좋아하는, 그러나 가격까지 순하진 않아서 한 번씩 마음먹고 사는 요가복 브랜드를 하나 알려줬더니 눈이 뒤집힌다. 매일 재고가 없어서 재고가 풀리는 날에는 마치 인기 많은 교양과목 수강 신청하듯 구매해야 하는데 하필 바로 재고가 들어오는 날이 오늘 오후였던 거다.


나 : 언니 미안해 내가 이 브랜드를 내일 알려줬어야 하네. 언니 통장이 텅장되는 걸 지켜줬어야 하네.

동기 언니 : ㅋㅋㅋ 너 너무 웃겨


무튼 우리는 그 오후에 각자 입고 싶은 요가복 하나씩을 미리 찜해두고 구매신청(?)에 성공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는 요가나 잘하고 옷이라도 사면 말을 안 한다며 둘 다 요가복에 대한 열정에 한~참 못 미치는 서로의 요가 실력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맞다. 실은 요즘 요가복은 내게 진정한 사치품이다. 국어사전에서 분수에 지나치거나 생활의 필요 정도에 넘치는 물품을 사치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사실 진정한 요가 수련은 무엇을 걸치든 가능한 일이고 내가 매일 누군가를 가르치는 전문 강사도 아닐뿐더러 굳이 요가복이 낡아서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하나둘씩 늘어가는 명품가방을 보며 순간의 부러움은 (다행히?) 채 30분을 가지 않는데 요가복에는 그토록 열을 올린다. 내 스스로 알고 있는 요가 실력을 떠올리면 요가복에 대한 욕심이 자꾸 화끈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요가가 잘 안될 때 더 요가복을 산다. 삶의 어떤 부분에 걸려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그 핑계로 요가가 가기 싫어지는 날, 마음에 드는 요가복 한 벌 잘 입고 나면 그 모습에 다시금 요가원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작은 기분전환에 가끔 사소한 걱정들은 사라지기도 한다. 떳떳하지 못했던 일터,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 인간관계의 문제가 도저히 잊히지 않는 날이면 내 몸에 걸친, 나의 분수에 좀 지나친 요가복 한 벌 만큼에라도 떳떳하기 위해 매트 앞에 서기도 한다. “너 오늘 완전 전문 요가인 같다.”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지 못한 나를 점점 요가의 세계로 더 이끌기도 한다는 것을. 훌륭한 동기(動機)도 사람을 움직이지만 때론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은 이토록 개인적이고 사소한 옷 한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 이유다.


방송인 전현무 씨가 4개 국어 능력자가 된 계기를 한 번 방송에서 밝힌 적이 있다. 자신이 한국어, 영어,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까지 잘한다고 기사가 났더랬다. 그래서 그 기사처럼 되기 위해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이다. 기대에 벗어나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자는 게 시대의 흐름인 듯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막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몰라 그 자리에서 한 발짝 움직이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막상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게 없는데 그렇다고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 모를 때 나는 이렇게 일부러 사치의 무게를 빌려오기도 한다. 물론 늘 그 태도가 너무도 당연하게 변질되지는 않게 늘 경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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