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다리
보통 수능 끝나고 운전면허를 많이 따지만, 나는 뜻하지 않게 긴 수험생활을 보내고 유학도 가게 되면서 운전면허를 딸 타이밍을 놓쳤다. 그래도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땄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딴 시기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취업준비를 하던 때였다. 취업준비로 원치 않은 영어공부, 자격증 공부를 하는 나날이 지속되자 지쳐가던 때,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준 친구가 운전면허를 땄다고 하길래 나도 따 볼까? 싶어서 바로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게 됐다. (이 친구 덕분에 나의 행동반경은 글로벌하게 넓어졌다.) 내가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할 당시는 운전면허 따기가 역사상 가장 쉽고 간소화됐던 때로, 기능시험은 50미터 직진 후 멈춰서 비상등만 켜면 통과였다. (믿기지 않았지만 진짜 그랬다.) 일주일 만에 운전면허를 따긴 했는데 정말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운전면허증은 새로운 신분증으로 전락한 채 지갑 속에서 썩어갔다.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번아웃이 찾아왔던 (나 스스로 번아웃이라고 진단했던) 2년 전이다. 뭔가 새로운 걸 배워보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돈 들인 만큼 써먹을 수 있는 활동적인 배움(?)으로 생각난 것이 운전연수였다. 바로 운전연수를 신청해서 주말을 이용해서 총 10시간을 이수했다. 내가 진짜 운전을 한다고? 싶었는데 하니까 하게 되더라... 내가 운전한 차로 팔당댐까지 갔는데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 같고 뭔가 뭉클한 기분이었다. 그 뒤로 아빠 차로 조금씩 운전을 해보고 하니 내 차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를 사려면 유지비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작년에 새롭게 리뉴얼된 아반떼를 구입했다! (아빠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알라뷰)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 많은 곳 가기도 힘들고 대중교통도 피하고 싶어서 겸사겸사 구입했는데 사실 아직도 겁이 많아 많은 곳을 다니진 못했다. 주차가 수월하게 되어야 하고, 옆에 누군가 있어야 안심이 돼서 1년이 넘은 지금도 혼자서 운전한 적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워낙 조심스럽게 운전한 덕분에 (거의 안 한...) 1년 무사고다. 앞으로도 좀 더 용기를 내서 다양한 곳을 운전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조카를 태워서 이곳저곳 데려가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또 뿌듯함을 느낀다.
비록 운행을 자주 안 해서 1년 만에 방전이 3번이나 됐지만... 자동차, 안 샀으면 어쩔 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