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문방구에 가면 꼭 사던 것이 있다.
바로 그 잔디인형.
처음엔 스타킹 같은 망에 흙이 담겨 있고,
눈과 코가 달려 있다.
만득이 같기도 하고, 어딘가 멍청하게 생긴 얼굴이
꽤 귀엽다.
최근에 우연히 들른 구멍가게에서
그 잔디인형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설렜다.
세상에, 이게 아직도 있다니!
어렸을 때 나는
내 손으로 무언가를 키운다는 느낌을 참 좋아했다.
그 성취감의 시작에
이 잔디인형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설레는 마음에 얼른 한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두근두근 박스를 열어보니
잔디인형의 눈동자 검은 부분이 살짝 깨져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오히려 풍파를 다 겪은 것처럼 세 보이고 좋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 잔디인형의 이름을
‘잔디인형’에서 ‘디’를 뺀
‘잔인 형’이라고 지어주었다.
듬직한 형님 같은 이름이면서도,
귀여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살짝 잔인한(?) 이름.
이 묘한 반전이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가 어떻게 자랄지
괜히 두근거렸다.
하루, 이틀, 사흘.
햇빛이 부족할까 봐
식물 등을 따로 비춰주고,
물이 줄어들면 다시 채워주고,
또 마시면 또 채워준다.
어느 날 빼꼼—
머털도사처럼 하얀 솜털이 올라오더니
그 위로 연둣빛 잔디가 자라기 시작했다.
광합성도 제법 멋지게 해낸다.
일주일이 지나자
제법 늠름한 ‘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나를 째려보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어릴 적엔 잔디인형의 머리를 길게 길러
양갈래로 묶어주곤 했다.
최대한 깜찍해 보이기 위한 나름의 스타일링이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볼까?
어린 시절처럼 양갈래를 해볼지,
옛날 산다라박 머리처럼 위로 쫑쫑 묶어
비엔나소시지처럼 만들어볼지,
아니면 심슨 엄마 마지처럼
최대한 위로 길러볼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사람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무언가를 키우며 성취감을 느낄 때라고 한다.
어쩌면 작년부터 식물을 키우는 데 재미를 느끼게 된 것도
이 작은 친구들 덕분인지 모른다.
새싹을 내고,
따뜻한 날씨에 꽃을 피우고,
오로지 내 손길에 의해 자라나는 모습이
괜히 대견하다.
식물을 키우듯
이 잔디인형을 돌보는 것도
어쩌면 작은 육아 아닐까.
꽃집에서 이미 자란 식물을 데려오는 것과 달리,
잔디인형은
흙 덩어리 상태에서부터
싹이 트는 순간을 처음부터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신기하고, 더 뿌듯하다.
물론 이 ‘잔인 형’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넓은 잎을 펼치지도 못한다.
그저 가느다란 잔디일 뿐.
그런데도 이 소박한 초록이
이상하게 귀엽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보는 사람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점.
그게 이 작은 친구와 함께하는
가장 재미있는 육아 방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