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눈

by 밍다람

문득 아침에 코끼리 눈이 떠올랐다.

전날 밤 넷플릭스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잠들었기 때문일까?


엘리베이터에서 센을 곁눈질하던,

하얗고 무처럼 생긴 그 존재를 보며

왠지 모르게 코끼리가 겹쳐 보였다.


덩치가 크고 느릿한 움직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코끼리 눈은 정확히 어떻게 생겼더라?

막상 떠올리려니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왠지 졸려 보이거나, 인자하거나,

어딘가 슬퍼 보이는 눈으로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보고는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눈이 아주 또렷했다.


몸집에 비해 작아 보일 뿐,

깊고 단단하게 빛나는 눈이었다.


코끼리는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높은 위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긴 코로 사물을 직접 만져 확인한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을 함께 사용하는 동물, 코끼리.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끼리와의 기억은 한 번뿐이다.


스물다섯, 첫 해외여행으로 떠났던 '라오스'에서였다.

그곳은 아직 관광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강했다.


친구와 함께 ‘코끼리 타기 체험’을 신청했다.

코끼리를 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자연 속을 천천히 걷는 평화로운 체험일까,

아니면 교감에 가까운 시간일까.


막상 마주한 코끼리는 압도적으로 컸다.

등에 올라타자 높이가 4~5미터는 되는 듯했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

내 무게가 부담이 되지 않을지도 걱정됐다.


코끼리는 안내 직원과 함께 코스를 돌았다.

그러다 물가에 이르자 갑자기 물속에 앉아

코를 가득 담근 뒤 우리에게 물을 뿌렸다.

그 순간만큼은 장난기 어린 표정처럼 보였다.

그런데 코끼리가 한참을 물에서 놀자

직원이 회초리 같은 것을 들고 와

엉덩이를 몇 차례 내리쳤다.

그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다.


코끼리는 천천히 일어났다.

더 놀고 싶다는 듯,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이 체험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저 코끼리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단순한 관광 상품이라 여겼던 선택이

어쩌면 동물에게는 또 다른 노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내 기억 속 코끼리의 눈은

늘 슬퍼 보였다.


그리고 오늘,

사진 속 코끼리의 또렷한 눈을 다시 보며 깨달았다.


나는 10년 동안 그 눈을

내 기억 위에 덧씌운 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의 장면과 죄책감이 겹쳐져

코끼리의 눈을 ‘슬픈 눈’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자연에서 코끼리를 가까이 마주할 기회가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미안해진다.

오래도록 그 눈을 슬픔으로 단정 지어버린 것 같아서.


모든 코끼리들이

누군가의 체험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

평온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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