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웃음은 왜 전염될까?
나는 배시시 웃고 있는 그림이나 캐릭터를 참 좋아한다. 그림에는 마음이 담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심리, 기분, 상태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표정을 그릴 때면 더 그렇다. 나도 모르게 그 표정을 따라 하게 된다.
웃고 있는 표정을 그릴 때는 나도 같이 배시시 웃고, 화난 표정을 그릴 때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린다. 스스로는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고 나면 꽤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그린 표정을 내가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인지 나는 웃고 있는 그림이 더 좋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도 웃고 있었을 것 같고, 그걸 보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따라 웃게 될 것 같아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웃고 있는 그림은 결국 모두를 조금씩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아마 내가 유독 그런 그림을 좋아하고, 자주 그리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림 취향도, 색감 취향도 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작가가 다른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중에서도 ‘웃고 있는 표정’이 가장 크게 남는다.
나는 언제부터 그림을 좋아했을까. 너무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유치원생 때보다 더 어렸을 것 같다.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이것저것 그리는 걸 좋아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때의 영향인지 엄마는 나를 미술 유치원에 보냈고, 태양에 선글라스를 그린 그림을 보고 원장님이 상상력이 또래보다 뛰어나다며 계속 미술을 시켜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미술은 취미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지금의 나도 스스로를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만약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요즘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다. 괜한 아쉬움과,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조금 더 당당했다면, 눈치를 덜 봤다면, 하고 싶은 걸 더 밀어붙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분명한 건, 나는 여전히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는 그 좋아하는 마음을 더 아끼고 싶다. 늦었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끝까지 좋아하면서 살고 싶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나의 낭만을 잃지 않으면서 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