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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Dec 13. 2020

내가 필름 카메라를 찍는 이유

제주도 여행 사진을 스캔하며

이번 필름 중 가장 사랑하는 사진. 눈으로 봤던 그 느낌 그대로 담겼다.

제주도 여행 필름을 스캔했다. 필름 카메라는 생각보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카메라가 있다는 전제하에, 종류별로 다양한 필름들을 직접 고르고 사야 한다. 가격비교는 필수다.(점점 비싸지고 있다) 필름을 끼운 이후에도 신경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배터리가 있겠거니 하고 찍다가는 스캔하러 갔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당연히 배터리에 약이 있다고 생각하고 팡팡 찍다가, '사진을 찍고 있다' 고 생각한 게 모두 착각이었다는 걸 현상소에서 깨달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래도 찍다가 중간에 배터리가 나간 덕(?)에 반은 건졌던 기억이 있다.


되돌릴 수 없는 24 혹은 36장을 다 찍고 나면 스캔을 할 곳도 찾아야 한다. 필름은 현상소나 스캐너 종류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그래서 다양한 곳을 이용해 보는 중이다.) 스캔을 맡기고 나면 사진은 메일이나 등등을 통해 전송되지만, 필름을 다시 받기 위해서는 어쨌든 다시 사진관을 방문해야 한다. 같은  필름을 다시 스캔할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사진이 날라가거나 다른 스캐너로 스캔을 해보고 싶어 지면 필름이 있는 한 OK니까. 뭔가 필름을 사진관에 남겨두어 폐기 처분하도록 두는 것이 묘하게 내키지 않는다.


핸드폰에 필름 카메라 효과를 내주는 어플들도 많은데, 굳이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사진을 찍는 이유가 뭘까. 다들 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을 테고, 사진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더 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내게는 그 이유가 '기대감' 때문이다.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을 때,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빨리 사진관에 가서 스캔을 하고 싶은 기대감. 어차피 눈앞에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핸드폰 사진처럼 여러 장을 찍지 않고, 공들여 한 두장 정도를 찍는다. 필름 값도 만만치 않아서 더욱이 한 피사체를 여러 번 찍기도 어렵다. 그래서 찍는 모든 사진들이 소중하고, 소중해서 더 기대하게 된다. 다양한 사진관을 찾아다니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 또한 어떤 사진이 나올지 몰라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어른이 된 이래로 이렇게 기대하게 만드는 취미가 있었던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이다. 필름 카메라를 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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