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와 SF를 스릴 넘치게 담아낸 생태소설의 매력을 파헤쳐보자
올해 특히나 더 인기가 많아진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으로 정세랑 작가를 처음 접했다. 처음엔 스릴러인가 싶다가, 로맨스? SF? 생태소설? 장르에 대한 물음표를 찍다가 알게 됐다. 그 모든 장르를 담고서도 중심을 유지하는 멋진 소설이라는 걸. 그러고 보니 제목까지 멋지잖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멋진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속 문장과 매력포인트를 기록해본다.
“한아가 맡는 일의 많은 경우가 사랑하던 고인의 옷을 고쳐 입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주문이었다. 옷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망설임으로 옷을 내려놓기 힘들어했다. 한아는 그런 다정한 주문일 수록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주인공 한아가 하는 일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옷들을 변형하여 더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아라는 인물에 딱 맞는 직업. 오래된 옷들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오는 사람들과 그 옷을 더욱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한아 모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책 속 군데군데에 어려있다.
“백날을 생각해봤자 답은 똑같을걸요.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난 따라갈 거야. 내 아티스트.”
여러 가지 장르를 아우르며 중심을 잡을 뿐 아니라 캐릭터도 쏠림 없이 고루 중심을 잡고 있음이 느껴지는 부분. 아폴로라는 가수가 세계의 중심인 주영이라는 인물의 말이다. 살면서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다면 당연히 공감이 갈 것이고, 팬이었던 적이 없다고 해도 이해할 문장. 내가 빛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에게 핀 조명을 떨어트리고 있다.
“나는 안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한아와 경민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스포 없이 읽어야 재미가 배가된다. 이 문장은 분명 책 소개글에서도 만났는데. 책을 읽다가 발견하는 순간 탄식을 터트렸다. 너를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다는 사람에게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있나. 담백하고도 절절한 사랑이다.
“다행히 아폴로와 주영은 외화를 잘 벌어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영이 아폴로의 공연 영상이 담긴 알 수 없는 재생기를 보내왔는데, 둘 다 아주 좋아 보였다. 재생기는 한 번밖에 재생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저작권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과감한 상상력이 드러난 부분도 많지만 꽤나 현실적인 SF 장르소설이다. 저작권 때문이었다는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나는데, 내가 저 멀리 다른 우주 생태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도 영상을 무한 반복하도록 보내진 않을 것 같다. 역시 한번 보면 펑 터져버리는 기계에다 담아 보내겠지.
“경민은 한아만큼 한아의 신념을 사랑했다. 한아의 안에도 빛나는 암석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흔히 이상형으로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 그 말과 어떤 사람의 신념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아의 신념은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르고, 심지가 아주 굳은 신념이다. 그 가치관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디뎌나가는 하나뿐인 존재 경민. 그리고 내게도 하나뿐인 소설이 된 <지구에서 한아뿐>. 덕분에 정세랑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 날들을 기대하고, 어쩌면 많은 이들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환경보호라는 메시지가 다시금 각인되지 않을까 하며 기대하고, 마지막 장이 오는걸 아쉽도록 만들어준 한아와 경민의 미래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