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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Dec 05. 2020

내 지난 사랑을 돌아보게 만드는, '덧니가 보고 싶어'

그리고 정세랑 작가의 매력

이번에 <소설 속 한문장>에 기록해 놓고 싶은 작가도 정세랑이다. 지난번 '지구에서 한아뿐'에 이어 '덧니가 보고싶어' 라는 장편소설을 찾아 읽었다. 표지가 독특하고 신선해서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재화는 용기를 아홉 번 죽였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숨을 확실히 끊어놓았다.

첫 장의 첫 문장부터 흥미로웠다. 시나리오로 써서 영화화해도 재밌을 것 같았던 소설. 계속해서 다음이 기다려지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던 '덧니가 보고싶어'의 기억에 남는 문장들과 내가 생각하는 정세랑 작가의 매력을 적어보려 한다.



"나 오빠랑 그런게 하고 싶었어. 우리 둘이 사랑을 하다가 헤어지거나 한쪽이 죽거나 하더라도. 사람들이 다 우리 사랑을 기억해서. 근사하고 특별했다고 기억해서 다 괜찮은. 그런 대단한 사랑 말야. (중략) 다른걸로는 대단해질 수 없다는 걸 일찍 깨달았거든."

"가볍게 손톱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여자친구도 입맞춤의 의미를 깨닫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랑, 세계가 기억할 사랑을 얻기를. 나는 줄 수 없었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어."


사랑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는 행위는 아니더라도 하다보면 조그마한 목표들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용기의 여자친구가 말하는 저 대단한 사랑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기록되고, 회자되고, 대단했노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우니까. 이왕이면 내가 했던, 혹은 내가 할 사랑이 그런 세기의 사랑이면 좋겠는 마음이겠지. 나도 그런 마음이 일부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사랑의 모양이 곧 내 정체성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생각때문에.


"좋겠다. 언니는 누군가의 정답이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정답으로 지켜나가는 사람이니까. 난 누군가의 유사답 정도는 되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한 번도 정답은 못 되어봤네."

"그런 거 될 필요 없는 것 같아. 누구의 무엇도."

"행복에 강박을 가지지마. 그건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랬어. 다들 그 일시적인 상태를 또 가져보려고 아등바등 하는 걸거야."


누군가의 정답인 관계가 있을까. 연인이 있고, 배우자가 있다면 누군가의 정답인걸까. 어떤 관계를 서로의 정답이라고 정의내리는 순간부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오답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더 잘해내려고 애를 쓰게 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과 상대방에 맞추려고 애를쓰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 자신이 오롯이 바로 서 있느냐의 차이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애를 쓰는 걸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 문을 나섰던 순간이 기억났다. (중략) 차마 그 그림자 안에 재화를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마음이 약해졌을 때였다."

"절단면이 깨끗해야, 다시 이어붙일 수 있어.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비정하게 들렸었다."


헤어진 후에 이상한 사람이었네, 그래도 그 부분은 좋았네 생각하며 회상하는 재화와 용기를 보고 생각했다. 저 두 사람은 재회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헤어졌다. 재회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해서 결과까지 꼭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여지가 없는 이별도 많다. 사람마다 그 여지를 두는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두 사람의 기준이 서로 일치해야 재회가 가능한 것 같다. 나는 바닥까지 보이며 끝낸 연애는 재회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바닥이 아니고 그냥 '나' 라는 사람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는 바닥, 그런 바닥까지 보이게 하는 사람하고는 재회할 수 없다. 세상에 좋은 이별은 있을 수 없지만, 최악의 이별은 면할 수 있다. 재화와 용기는 최악의 이별을 면한 사람이 아닐까.


좋은 작가, 좋은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정세랑 작가가 많은 사람들의 최애작가인 이유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언제나 마음이 요동치듯 움직인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어찌보면 가장 독특하고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괴리감이 없다. 소재는 독특해도 보편적인 삶의 모양을 꿰뚫어보고, 그걸 다시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어서다. 특별한 단어, 문장이어서 발길을 멈추게 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어서 문장을 다 읽고나면 탄식이 뒤늦게 흘러나오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세랑 작가의 매력이다.


이전에 리뷰를 적었던 '지구에서 한아뿐'은 잊지 못할 소설이지만 좀 더 내 취향이었던 것은 ‘덧니가 보고싶어 ‘다. 위에 언급한 문장들 속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덧니가 보고싶어'에는 작가인 재화가 써온 수많은 조그만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언뜻보면 동화인데,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해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집 속에 수록되어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반짝반짝해서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들이 기다려졌다. (작가님,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도 기대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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