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등학생 시절 작성했던 '인생의 버킷리스트' 목록을 발견했다. 테두리 안에 갇혀있던 시절이라 거창한 것들만 적혀있지는 않았다. 내 손으로 돈 벌어보기, 코엑스 아쿠아리움 가보기(당시 빠져있던 드라마에 나와서), 조승우가 하는 뮤지컬 보기 같이 소소한 것들도 있는가 하면. 수능 만점 맞기, 매년 일기 쓰기처럼 철 지나 영원히 이루지 못할 항목들도 있었고. 프랑스어 독파하기(영어도 독파를 못했는데..), 집 사기처럼 생각보다 몹시 거창한 꿈도 마음속에 품은 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일회성 목표들 가운데 이미 이룬 것들을 세어보니 1/4 정도였다.
근래의 나를 지배하는 가장 큰 분위기는 무력감이었다. N 잡러 가 대세인 지금, 하루하루를 더 생산적이게 살아도 모자란 시기를 살고 있는데 정작 나는 출근과 퇴근만으로도 지치는 사람이었다. 그 와중에도 하루를 좀 더 쓸모 있게 살아보겠다고 To Do List를 만들었고, 역시 출근과 퇴근만으로도 지치는 나는 그 리스트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또 빠지는 아이러니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발견한 저 버킷리스트 목록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 쏜살같이 빨라진 하루하루를 붙잡으려다 보니 삶을 너무 가까이에서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앞으로의 시간을 모두 포함한 내 인생 전체니까 1일이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았다고 해서 무력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즐거움이 빠진 채 하루의 계획을 정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괴로움에 빠지기보다는,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 버킷리스트를 찾아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 그래서 저 목록 뒤에 앞으로 이루고,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다시 적어갈 생각이다.
p.s. 오늘의 즐거움: 야근으로 잠시 멀어졌던 브런치와 다시 한 발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