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악이 테마가 된 영화 <만약에 우리>와 공연 <뜨거운 여름>
최근 한국영화 중 드물게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고 왔다. 흑백으로 시작하는 필름이 마지막까지 흑백으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색깔을 찾을지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의 대표 곡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다. 그 시절 사람은 아니지만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는 부분의 음악이 워낙 유명해서 익숙한 곡. 치기 어린 청춘을 다루는 작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노래다.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영화 <만약에 우리>는 정원(문가영)과 은호(구교환)의 이별로부터 시작해 만남을 돌아보는 영화다. (시놉시스에 있기 때문에 스포가 아니다) 주체할 수 없이 커지는 마음,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청춘, 모든 걸 다 해주겠다던 사람은 닥쳐오는 고난에 과거의 약속을 잊은 듯하고 결국 상처를 남기며 끝나는 이별엔딩. 과정만 보면 굉장히 클리셰적인 스토리를 가진 청춘 영화인데 이 작품의 매력은 다른 데에 있다. 보통은 아쉽게 끝난 첫사랑을 보면 그때 헤어지지 말았어야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작품은 둘이 그때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은호와 정원은 인생에 가장 뜨거운 시기에 만나 뜨겁게 사랑했고, 딱히 기댈 곳이 없던 서로에게 생의 의지가 되어주었다. 삶의 고통의 정도가 일반적인 청춘이 감당하는 정도였을 때는 서로가 보듬어주며 고통이 줄어들기도 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서로의 무게까지 가중되어 짓눌리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이별을 시작했던, 둘은 본인과 상대방의 삶을 위해 이별을 택했다. 그렇게 다행히도 각자의 자리에서 바로 서게 된 둘은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접근이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 둘이 지금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수나 있었을까. 어떤 관계는 헤어져야 서로에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
한편 이 명곡이 등장하는 또 다른 스테디셀러 공연이 있다. 바로 민준호 연출의 연극 <뜨거운 여름>이다. 2014년 초연작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작년까지 극단 '공연배달부 간다'의 20주년 기념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꼭 이 노래의 가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만약에 우리>가 이별로 필름의 시작을 알린다면 연극 <뜨거운 여름>은 첫사랑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재희가 첫사랑 채경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과거 청춘 시절을 떠올리는 작품인데, 비단 사랑뿐 아니라 질풍노도 가득했던 청춘시절의 우정과 갈등, 사랑과 이별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도 두 주인공이 듣는 음악으로 임현정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재희와 채경의 사랑이 정말 노래 가사처럼 봄비같이 풋풋하게 시작된다. 유학만 아니었더라면 둘은 계속 사랑을 키워나갔을까. 사실상 거의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버린 사랑의 여운이 너무 짙어서인지 재희는 채경과 똑같이 닮은 사랑을 만나지만 오랜 연애 끝에 현실적인 문제들로 함께하지는 못하게 된다.
영화 <만약에 우리> 속 은호와 정원은 봄비처럼 사랑을 시작하고 겨울비처럼 이별을 맞이했다면, 연극 <뜨거운 여름> 속 재희와 채경은 봄비처럼 시작해서 여름비처럼 끝이 난다. 그래서인지 관객으로서 재희와 채경의 만약은 상상해 보게 되는 반면, 은호와 정원의 만약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달까. 산전수전 다 겪고 겨울비처럼 시리게 끝난 사랑에 '만약'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