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두 전시를 비교해봅니다.
한 3년 전만 해도 국내 미디어아트 전시가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디어아트 전시라고 이름이 붙어있지만 모니터나 조금 큰 화면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는 전시들이 많았다. 그나마 조금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2016년에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렸던 <반고흐 인사이드전>. 건물과 아치형 천장, 벽 등을 활용해서 고흐의 그림을 비춰주었고, 그 웅장함과 고흐라는 작가의 삶의 굴곡 그리고 음악이 만나 기억에 남을만한 전시를 탄생시켰다. 꽤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근래의 미디어아트 전시에 쏟아지는 관심과는 역시 비교하기 어렵다. (저장해놓은 사진을 찾는다면 반고흐 인사이드전은 따로 한번 리뷰하고 싶다.)
2018년 제주도에서 처음 개관했던 빛의 벙커 클림트전이 제주도에서 큰 화제가 되면서 미디어아트 전시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SNS용 전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이쯤이다. 그동안은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명화나 진품 중심의 전시회에 이목이 쏠렸다면, SNS의 열풍은 사진 촬영이 자유롭고 셀피가 잘 나오는 '사진 촬영'의 목적성이 강한 전시들의 예매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외국 유명 미술관, 박물관에서 들여오는 명화나 진품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 절대 불가하다.) 그러나 빛의벙커전이 그야말로 히트를 친데에 저 이유만 있는것은 아니다. 클림트나 고흐처럼 쨍한 색감을 잘 사용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크고 웅장한 공간에서 바라볼 때 느껴지는 울림이 남다르다. 게다가 두 작가의 작품은 다른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의 미적인 부분이 가지는 매력이 강하다.
여기까지 언급했던 전시들은 기존의 명화를, 프로젝터를 통해 대형공간에 나타나도록 만든 전시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팀랩: 라이프 전과, 아르떼 뮤지엄. 이 두 가지 전시는 조금 더 특별하다. 이유는 창조와 변화 때문이다. 두 전시 모두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창조했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요소들을 심어놓았다.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능동적인 작품들이었다.
먼저 팀랩 라이프의 전시는 '팀랩'이라는 미디어아트 창작집단의 모토가 중요하다. 아티스트, 수학자, 건축가, 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랩은 인간과 자연, 개인과 세계의 새로운 관계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집단이다. 또한 인간은 바깥세상과 스스로를 분리하고 구분하려 하나 이 세계의 모든 것은 광대한 시간 속에, 생명의 끝없는 연속 안에 가까스로, 하지만 기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장 입구에 적혀있는 팀랩의 소개글은 이번 팀랩 라이프 전시의 키워드를 담고있다.
꽃이 하나 둘 모여 코끼리가 되고, 기린이 되더니 내 주변을 뛰어다니고 날아다닌다. 신기해서 다가가 만지니 동물들이 흩어지고 소멸된다. 아주 작은 새싹부터 피어나는 꽃들로 가득한 관도 마찬가지다. 꽃에 손을 대니 잘 자라서 만개하던 꽃들의 잎이 하나둘씩 떨어진다. 4면의 벽을 가득 매우던 큰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은채로 암 전이된다. 뭐지? 만져서 꽃이 떨어진 건가 어떻게 된거지? 생각하는 순간 다시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내가 느낀 팀랩전을 요약하면 이렇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지막관에 있던 <물입자의 우주>라는 작품 얇고 작은 물줄기가 점차 광활하게 번져나가고, 사람이 디디고 있는 발이나 몸을 비껴서 흘러나가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이 끝나고 나면 벽과 바닥에 꽃이 피는데, 가만히 서있으면 발밑에 꽃이 피는걸 서서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거나 만지면 역시 꽃은 소멸한다. 그렇게 두 작품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피어나는 꽃의 종류도 달라진다. 생명과 시간, 인간과 자연 모든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다.
팀랩전의 매력은 일회성 관람에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전시장을 두세번 더 찾아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 역시 전시장 안에서 꽤 오랜시간을 보냈지만 알아낸 작품의 비밀들보다 몰랐던 것들이 더 많다는 걸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느꼈던 걸 어느정도 종합하면 이렇다.
1. 사람이 예쁘다고 자연에 손을 대면, 자연은 소멸하는구나.
2. '왜 꽃이 안 피지?' 하고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다는 것.(시간이 해결해준다)
3. 인터랙티브 전시니까 처음에는 방방대며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나중이 되면 넋 놓고 감상하게 된다.
알아낸 것: 꽃으로 이루어진 동물들은 관객이 만지면 소멸한다. 꽃이 피고 지는 작품은 스스로 피고, 스스로 지지만 사람들이 꽃을 만지면 줄기가 빛이난다. 마치 생명을 부여하는 느낌이 들지만 줄기에 빛이 들고나면 꽃잎이 떨어지며 소멸하는 시간이 더욱 빨라진다. 그리고 거기서 피어나는 꽃들은 종류가 몹시 많다.
몰랐던 것: 골짜기에 나타나는 생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악어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나비가 날라다니는 작품은 전시장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전시장 안에 있는 사람이 나비에 손을 대면 소멸한다. (나비는 아예 몰랐던 부분이어서 다시 가서 경험해 보고 싶다)
지금 DDP 에서 열리고 있는 팀랩 라이프전에는 팀랩이 만든 일부 작품이 구성되어 있고, 위의 링크로 들어가면 창작집단 팀랩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매번 다른 도시에서 다양하게 작품을 구성해서 전시한다고 하니, 일본에 가게 된다고 해도 이번 DDP에서 본 작품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다음 편에 제주 아르떼뮤지엄을 리뷰하며 다시 언급하겠지만, 아르떼뮤지엄의 작품과 비교하여 팀랩의 작품이 가지는 강점이 있다. 훨씬 능동적이다. 관객이 행위하는 것들이 직접 반영되어 나타나고, 관객의 개입으로 작품의 의도를 자연스레 느끼게 만든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전시 소개글로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꽃을 만져보고, 자꾸 손대어 만지니까 소멸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알게 만든다. 이 점은 기존의 도슨트에 의존하던 대다수의 많은 전시와 다른 아주 특별한 점이다.
두 번째 강점은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을 소재로 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시각적으로 불편함이나 피로감이 덜하다. 광활한 전시장을 온통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도배해놓는 경우,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눈이 피로해진다. 그러나 팀랩전은 파도, 물줄기, 꽃 처럼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어 그런 피로감이 덜하고, 오히려 쉬고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위에 언급한 마지막관, <물입자의 우주>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하염없이 앉아서 보게 되고, 폭포 아래에서 쉬는 기분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