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
친구랑 쇼핑을 하던 중 자주 가는 숍을 몇 군데 들렀다. 친구는 ‘우와, 이런 곳도 있었어? 쓸모없는데 이쁘다.’며 친구는 딱히 사고 싶은 건 없지만 구경 삼아 나와 함께 있어줬다. 잠시 쉴 겸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 도중 친구가 말했다.
“난 취향이란 게 없어. 내 방은 좁고 엉망이라서 뭐 사들이기도 싫어, 나도 너처럼 멋진 공간 하나 있으면 좋아하는 거로 다 꾸며볼 텐데.”
음. 무척이나 난감했다. 우선 공간이 있다고 해서 취향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라고 얘긴 했지만 그다음 뭐라도 더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정리가 안돼서 ‘좋아하는 걸 여러 차례 마주해보고 곱씹어 봐’라고 얼버무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흩어져 있는 나의 취향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거꾸로 찬찬히 올라가다 보면 이유가 있겠지.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딱 잘라 거절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간혹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세계가 불쑥 비집고 나올 때가 있다. 시골길을 걷다가 마주한 노을을 볼 때, 여름비가 내리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흙과 아스팔트의 냄새, 바람이 지나간 후 들리는 대나무의 소리, 낯선 가족들의 웃음소리.. 이때 나는 뭉클한 감동을 한 번 받고, 눈가의 눈물이 두 번 고이고, 가슴에 세 번 되새기고, 기록하면서 네 번 이상 그때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건 나는 자연과 닮은 모든 것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취향을 다듬을 땐 ‘나 이런 거 맘에 들어 하고, 좋아하네?’하고 지나칠 뻔한 여러 장면 중 몇 가지는 기억해뒀다가 일상에 천천히 새겨보았다. 손이 많이가고 불편하더라도 마음에 들면 기어코 할 수 밖에 없는 기분 좋은 귀찮음을 즐긴다.
- 책을 사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따로 메모지 적어 표지 앞에 꽂아둔다.
- 내가 느낀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어 책을 읽고, 줄을 긋고, 다시 노트에 천천히 적는다.
- 책 넘기는 맛을 안다. 그래서 너무 두껍거나, 어려운 책이거나, 한 장에 깊은 생각을 요하는 시집은 좋아하지 않는다.
- 오래된 종이향, 비 온 뒤 습한 숲향, 묵직한 위스키 향이 섞인 인센스, 스머지, 샤쉐를 사고 발 가는 곳곳에 놔둔다.
- 새 이불보단 한 번 이상 사용하고 세탁한 이불을 좋아한다. 겉은 살짝 뻣뻣하나 사용하면서 부드러워지는 사용감 있는 이불을 덮는다.
- 어둡고 은은한 조명을 좋아한다. 혹은 조명을 샀는데 밝다면 커버를 한 겹 씌우거나 벽에 비추어 밝기를 낮춘다.
- 엄마가 구입한 도자기 중 표면이 거칠고 무늬가 없는 것만 골라 책장 위에 둔다.
- 필름 카메라를 샀고 풍경, 기억하고픈 장면을 찍고 인화해서 사진첩에 넣어둔다.
- 갈색 메모지와 검정 잉크 펜, 회색 형광펜을 책상에, 책장에, 침대 옆 테이블에 둔다.
- 아침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서 ‘Heart of Gold-Neil young’ 배경음악으로 깔아둔다.
- 밤에는 빔프로젝터를 천장에다 비추고 끝까지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더라도 어떤 장면을 봐도 감명받는 영화(이터널 선샤인, 노팅힐, 미드나잇 인 파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등)를 틀어놓는다.
- 인스타그램은 게시물보다 스토리에 일상을 기록하고 주제별로 하이라이트 생성해놓는다.
-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해놓은 카페보다는 사장님의 취향이나 진정성이 묻어 있는 곳을 선호한다. 으리으리하고 세련된 곳보다 허름하고 따뜻한 공간이 좋다.
- 걸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때 보이는 것들은 나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와 같다. 그래서 걷는걸 포기할 수 없다.
- 여행을 가면 고즈넉한 절이나 공간을 찾는다. 혹은 유명한 건축물이 있거나 생태공원이 있다면 무조건 가본다.
지금까지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이어서 써내려 갈 수 있도록 계속 걷고, 많이 감동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