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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면 혼자서 잘해야 하는 것들

혼자서도 잘해요

by 밍작가

30년 전 "꺼야~ 꺼야~ 할꺼야~ 혼자서도 잘 할꺼야~!!"라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서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지만, 마흔이 다 된 나는 사실 혼자서 잘하는 것이 많지 않았다.

혹시 기억하신다면...!?

혼자서 밥을 먹는 것도

혼자서 여행을 가는 것도

혼자서 카페에 가는 것도

주말에 온전히 혼자 있는 것도.


모두 다 어색하고 힘들었으며 눈꼴시려웠다.


스무 살 때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었고 친구나 동기들 그리고 전 여자친구, 혹은 전 와이프와 무언가를 하며 사는 것을 하며 20년을 살았으니 당연할 터.


초등학교 때 배운 '혼자서도 잘해요'를 까먹은 곧 마흔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로 혼자해야 했다.

함께 할 와이프는 법적으로 사라졌고,

함께 할 친구들은 각자의 가정에 충실하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로 회식문화는 많이 바뀌어서 퇴근하면 모두 집으로 향했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의 삶이 있었고,

이제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라도에 있었던 터라 남도 여행을 다녔는데, 이전에 갔을 때 참 좋았던 기억이 있는 여수로 갔다.


그때는 그렇게 좋았던 여수가 다시 가니 별로 좋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여수 향일암에는 수많은 가족들과 '평범한'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혼자서는 그 맛있던 간장게장을 먹으러 들어가기가 어려웠으며(1인분은 안 파니까...) 낭만포차에 들어가서 혼자 술을 먹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 혼자 가야 하는 여행지가 있구나. 여수는 혼자 오기는 위험한 곳이구나...


그래서 그다음으로 갔던 곳은 남해였다. 남해는 참 좋았다. 혼자서도.

남해에서 참 좋았던 게스트하우스

동네 자체가 조용해서 나처럼 혼자 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혼자서 어디를 가든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동네가 주는 고요함을 온전히 느끼며 남해바다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해에서도 밥 먹기는 힘들었다. 어지간한 맛집은 2인분 이상을 시켜야 했기에 그나마 만만한 곳은 중국집뿐이었던 현실.


그래서 여행계획을 잘 짜지 않는 P성향인 내가 이제는 어딘가를 갈 때, 식당만은 꼭 계획하고 가게 된다.


'혼자 먹을만한 맛집이 있는가?'

있다면 오케이!


그래서 지난 제주 여행에서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 먹고 다니면서 보람차게 여행을 했었다.

이렇게 혼자서도 여행을 잘하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밥으로는 헛헛함이 채워지지 않을 때도 있다. 맥주로도 그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이슬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


국밥집에 가면 '국밥이랑 소주 한병이요~'라고 자연스럽게 시키는 아저씨들처럼 나도 큰 마음을 먹고 따라 해봤다.

내 사진은 아니지만, 이 광경이 익숙함^^

혼자 왔는데 좋아하는 '진로'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냥 '소주'라고 말하게 되어서 참이슬을 마셔야 했던 기억도 있지만, 어쨌든 가끔의 고민과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서 투명한 알콜주는 필요한 법. 그렇게 소주가 필요한 날에는 국밥에 소주 한잔을 혼자 하는 스킬도 생겼다.


물론 이는 아무 식당에서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름의 선정 기준이 있다. 약간은 허름하고 프랜차이즈 식당이 아니며, 사장님이 푸근한 할머니 같은 분일 것.


이런 나름의 조건이 맞다면 가끔의 저녁은 아주 행복하고 살짝 알딸딸하게 마무리하고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이렇게 혼자서도 밥과 술을 잘 먹게 되었다. ^^


여행과 혼밥보다도 어려운 건 '평범한' 주말을 보내는 것이었다. 딱히 이벤트가 없는 그런 평범한 주말을 잘 보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즉, 나만의 평범한 주말을 보내는 법을 재정립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것도 그럴 법한 게 주말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놀러 다니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어려울 법도 했다.


결혼생활 중에 눈치 보며 못했던 것들을 느린 호흡으로 하나하나씩 시작했다.


혼자 영화도 보러 가고, 혼자서 전시회도 다니고, 그냥 아무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채워지지 않을 때는 글을 쓰고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게 글쓰기였고, 그렇게 책이라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혼자 지내다 보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다 보니 나의 생각이 정립된 무언가가 생겼다.

이렇게 혼자서도 나름 주말을 잘 보내게 되었다.


여행은 자주 안 가도 사는데 문제가 없고,

밥은 혼자 먹는 게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그래도

혼자 보내는 주말이 아직도 조금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목요일정도 되면 불안해지기도 하는 현실이지만,


나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가며,

내가 나만의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서

나만의 시간을 짙게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도.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나름의 짬바가 생기고,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될지도 모르지(?)


언제까지 혼자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혼자서 잘 놀아야 같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


언젠가는 이 시간이 참 그리울지도 모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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