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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다시 이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by 밍작가

분노, 실망, 배신, 이기심의 체험과 같은 것들이 파도를 만들어내어 이혼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 파도가 어느 정도 잠잠해진 2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걱정 없이 아이와 주말을 보내는 평범한 가정들을 보면서 '만약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1. 내가 싫어졌을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 사람과 나는 많이 달랐다. 아니 사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누구보다 민감했던 그 사람의 가감 없는 표현에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다름은 불만이, 불만은 화가, 화는 갈등이 되어 매일매일을 갈등 속에서 '살아내는' 삶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갈등의 표현이라는 것도 한 번 시작하게 되면 그 정도는 결국 우상향 하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의 표현도 격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나대로 불행하고,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불행하고, 그 사이에 있는 공주는 또 그대로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환경은 결국 인생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잘 못 살고 있구나...'라는 감정으로 다가와서 나를 공격했겠지. 그렇게 나는 내가 싫어지고, 내 인생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견디며 살아내는 흔한 시한부 40대의 삶을 기다리며 살았을 것이다.


물론 그 갈등을 풀어내는 게 결혼생활의 가장 큰 숙제이고, 그 숙제를 우리는 풀지 못했기에 이혼이라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다이나믹한 관계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갈등을 디폴트값으로 여기면서 그냥 하루하루 견뎌냈겠지.


2. 좋은 아빠가 되려고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부모의 성장환경이 다르고, 이 성장환경이 육아 방식을 만든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본인이 어렸을 때 좋은 기억이 있는 활동들을 함께 체험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가 쉽다.


어렸을 때,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지냈던 누군가는 그 아이에게도 그런 육아를 시킬 것이고, 밖에서 뛰놀면서 세상을 배웠던 누군가는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 것이다. 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세상을 배웠다면 많은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혹자는 게임을 통해 두뇌발달이 되었다면서 게임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그 사람의 성장배경이 꽤나 달랐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도 참 달랐다. 내가 공주와 하고 싶은 것과 그 사람이 공주와 하고 싶은 것은 전혀 달랐다.


나는 공주를 데리고 야구장에 가고 싶을 것이고, 같이 운동장에서 뛰놀고 싶을 것이며, 가끔은 TV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가정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야구장보다는 집에서, 운동장보다는 쇼핑몰에서, 그리고 TV보다는 책을 통해서 아이를 키우려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부모의 기질에 따라서 함께 하는 행동이 정의되고, 이 행동의 차이는 또 다른 갈등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갈등은 가정의 불화와 자녀 교육에 부정적인 효과를 끼쳤을 테고.


(그래서 아이 교육은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건가...)


3. '남편', '아빠'라는 역할에 과도하게 종속되어 살았을 것이다.


이 시대의 아빠들은 대부분 '남편', '아빠'의 투캡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캡은 누구에겐 너무 무겁기도 해서 '나'라는 원래 쓰던 모자를 잃어버리고 그 역할에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남편과 아빠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쓰고 있던 캡은 바로 '나'라는 캡이다.)


이 두 개의 모자는 무겁다. 하지만 항상 무겁지만은 않다. 점점 가벼워진다.


신혼 초에는 남편의 모자가 너무나도 좋고 자랑스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관심과 애정이 식으면서 이 모자는 가벼워지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빠라는 모자가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겁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를 멀리하려는 자녀를 보면서 자연스레 모자는 가벼워진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점점 가벼워지는 모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네 인생의 공허함을 느껴버리는 데 있다.


인생에서 가장 의식적으로 에너제틱하게 살아가는 30, 40대에 그런 삶을 살다가 그 모자가 가벼워질 때쯤, 이미 힘은 없어지고 '나'라는 모자를 쓰던 시절의 기억은 잊히고 나니 다시는 내 모자를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시대에 '마흔'이 힘든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 아닐까.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열심히 살았지만 남는 것은 없고, 그러는 동안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게 되니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꿈이 많았는지.

내가 얼마나 할 줄 아는 게 많았는지.


나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까다로운 전 사람과 똘똘한 공주 사이에서 그 역할을 잘하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았겠지. 그러다 보니 내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은 일과 가정 이 두 가지의 역할 속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허락하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고민과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나'는 점점 사라졌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걸 바랐으니까.


결혼 2년 차쯤, 전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슬슬 자아가 생기네?"


본인은 친구들과 흔히 하던 이야기라고 하며, 무언가 요구하던 나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 그때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위험한 말이고,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녀에게 남편이라는 사람의 정의는 이것이었겠지.


"남편 : 자아 없이 내 말만 잘 듣는 남자"


이렇게 자아를 잊어야만 좋은 남편이 되는 환경에서 나는 나를 잊어가는 게 행복인 줄 알고 착각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글을 쓸 시간 자체가 없겠지.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힘도 사라졌을 것이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겠지.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책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건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달리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달리기는 그냥 힘든 것이고, 운동을 통해 얻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겠지.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평범과 평균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삶을 그 평균에 맞추려고, 이게 행복이라고 위로하면서 살았겠지.


이혼을 해서, 글을 쓸 수 있었고,

이혼을 해서,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용기도 생겼고,

이혼을 해서, 책을 썼고 달리기를 시작했으며,

이혼을 해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모든 일이 조화로웠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생이란 모든 것이 꼭 조화롭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군데가 비워져야만 채워지는 것이 있다. 그렇게 평범함을 비웠더니 '내 인생'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주는 평범함이 주는 위안이 있다. 이 안정감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이혼을 하면 안 된다. 그 안정감이란 둥지는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와보면 생각보다 얻기 힘드니까.


타인의 시선이 그래도 덜 중요하다면 이혼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인생의 방향과 노력이 적절하다면 평균 이상의 성공과 평범 이상의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함을 원하며 살았던 나이지만,

평범함을 버린 지금, 나에게 미션은 내 방향과 노력이 평균 이상의 성공과 평범 이상의 '나만의 삶'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중요한 미션을 수행 중인 것이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 흘러가는 인생을 모아서 물을 모으기도, 이 모아진 물을 통해서 에너지를 만들기도, 이 에너지가 평범하지 않은 큰 힘을 만들기도 하니까.


이왕 평범하지 않은 인생, 더 나처럼 살아봐야겠다. 그리고 다시 평범해져야 한다는 간헐적인 무의식의 공격을 잘 이겨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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