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10. 15.(일)
우리 공주는 냥냥이(고양이)를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애비는 털 날리는 동물 옆에 가면 알레르기성 비염이 도진다. 콧물, 재채기로 며칠을 고생한다.
이제 물어보는 말에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한 20개월 공주.
어제 서프라이즈 한 2시간여의 만남 중에 물어봤다.
"공주야. 아빠랑 내일 뭐 하러 갈까?"
"스타필드 갈까?(스타필드가 어딘지 알 리가 없다...ㅋ)"
"냥냥이 보러 갈까?(지난달에 처음 고양이 카페를 데리고 가봤었다.)"
"웅!!!!!!!"
냥냥이를 너무 좋아하는 우리 공주. 또 고양이 카페를 가자고 한다.
지난번,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 카페에 갔었다(애비도, 공주도). 책에 나오는 고양이만 보면 "냥냥이~, 냥냥이~"하면서 좋아하는 공주를 보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카페는 36개월 이상 입장이지만 사장님께 애기가 너무나도 좋아한다고, 잘 데리고 있겠다고 이야기해서 겨우겨우 들어갔었다.
들어간 지 딱 30분 만에 재치기가 나기 시작해서 한 이틀은 콧물, 재채기로 고생했던 것 같다.
이 고양이 카페를 또 가자고 한다.
"그래! 내일 할미랑, 할비랑 같이 냥냥이 보러 가자~"
할미, 할비랑 같이 서울로 갔다. 가보니 공주님은 낮잠을 자고 있다.
나는 전 사람과 우리 셋이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서 집 밖으로 나온다.
아빠한테 전화가 온다. 공주가 일어난 것 같다. 서둘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올라가니, 할미가 사 온 콩콩이 청소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공주다.
그런데 약간 분위기가 애매하다.
아마도 할미, 할비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공주가 약간 낯설어하는 것 같았다. 원래 텐션이 안 나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공주~ 아빠 왔어~"를 외친다.
공주가 뒤돌아본다.
밝은 미소와 함께 안긴다.
"아빠~빠빠빠~빠빠~"
"그래도 요새 지 애비를 더 자주 봤다고 키워준 할미보다도 더 좋아하네~" 엄마가 이야기한다.
이혼하기 전, 엄마가 평일 3일을 같이 봐주고, 내가 주말만 가던 시절에는 나보다 할미를 더 좋아하던 공주님이었다. 1등은 엄마, 2등은 할미였다.
이혼을 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서로 덜 보게 되면서 할미의 2등 자리가 조금 위태위태한 것 같다.
그래도
할미 생일날에 태어난 공주.
1년 간 할미가 수원에서 강동을 오가며,
잠도 예민하신데 복도 쪽 작은 방 불편한 침대에서 엘리베이터 오가는 소리 들으면서 주무시면서,
손녀딸 애미가 하는 기분 나쁜 아들 욕도 적당히 호응해 줘 가면서, (이 욕의 이유는 '다름'이었다.)
손녀딸 애미가 노필터로 뱉는 말실수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화가 났지만, 아들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들한테 이야기도 않고 꾹꾹 눌러 참으시면서...
정성스럽게 키운 손녀다.
이 모든 걸 참아가면서 하나뿐인 손녀딸의 행복을 위해 육체적, 감정적으로 희생하셨다.
그렇게 키운 손녀였다.
공주 옷을 입힌다.
"아빠랑 어제 냥냥이 보러 가기로 했잖아~ 냥냥이 보러 가자!"
귀가 입에 걸린다. 웃음소리가 밝아진다.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신났다.
지난번에 갔었던 고양이 카페에 들어간다. 애기가 몇 개월이냐고 물으며 우리를 가물가물해하는 사장님에게,
"아 지난번에도 왔었어요~"라고 이야기하며, 36개월이 안되었음을 살짝 이야기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공주는 초흥분상태다.
벽에 붙어있는 고양이 그림을 보고 가서는
"냥냥이~ 냥냥이~"라고 외쳐대며 너무나도 좋아한다.
책에서만 보던 냥냥이들을 실제로 보니 얼마나 신기할까.
처음 왔을 때, 냥냥이를 겁 없이 만지던, 심지어는 수염에도 손이 막 가는 공주였다.
어떻게 될까 무서워서 공주 손을 잡고 냥냥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준다.(애비도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만지는 게 더욱 조심스럽다.)
카페에서 주는 과자를 먹으면서, 냥냥이를 만지면서, 그 좁은 카페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공주는 애비와 냥냥이카페에서의 추억을 새긴다.
하지만 오늘도 내 코는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재채기와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이건 뭐 자동이다.
스타필드에 가는 것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냥냥이를 만지고 느끼며 애비와 함께 노는 것. 이게 공주에게 더 행복하고 기억에 오랫동안 많이 남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조금 더 크면 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더 많이 데리고 다녀야겠다. 아빠랑만 갈 수 있는 곳이면 더 좋을 것이다.
한 시간 반정도 놀고 나서 나온다. 아직 저녁을 먹기 이른 시간이다.
낙엽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동네 공원에 간다.
공원에 가자마자 애비의 손을 탁 뿌리친다.
그러더니 열심히 뛴다.
그 짧은 다리로 총총총 뛴다. 뛰는 게 엄청 좋은가보다.
나도 뛴다. 혹여나 넘어질까 봐.
뛰고 뛰고 또 뛴다.
100미터 달리기 육상선수로 경기도 대회까지 출전했었던, 애비의 핏줄인가.
아주 잘 뛴다. 땀이 범벅이 될 정도로.
낙엽을 한 줌 잡고 하늘로 던지는 것을 보여준다.
"공주야. 이게 낙엽이야. (하늘로 던지며) 슉~~~"
그랬더니 공주가 조막만 한 손으로 낙엽을 3~4개 움켜쥐고는 허공으로 던진다.
신나게 웃으면서.
재미있고 신기한가 보다. 아마 전 사람은 손 더러워질까 봐 못하게 하겠지.
이렇게 10월의 좋은 가을날에 아빠와 할미, 할비와 고양이와 낙엽을 보고 만지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저녁을 먹고 집에 데려다주고, 할미와 할비는 집으로, 애비는 전라도로 내려오기 위해서 용산역으로 간다.
공주가 행복하고 웃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애비와 할미, 할비는
가는 길 차 안에서 오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남들이 보면 불행하다고 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희생정신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리는 정신이다.
요새는 부모, 조부모 심지어는 삼촌과 이모까지 희생정신을 똘똘 뭉쳐서 발휘해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나와 우리 부모님만 희생정신이 뛰어난 건 결코 아니다. 모든 부모, 조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
알레르기 비염이 있어서 고양이 카페에 가면 며칠 고생하겠지만, 공주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가는 마음.
며느리랑 지내는 것이 힘들어도, 손녀딸 건강하게 자라고, 아들 가정에 평화가 오기 바라는 마음으로 고생하신 할미의 마음.
이렇게 개인의 명예와 이익이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 희생정신 비슷한 그 무언가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다.
부모의 희생정신이 있기에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것이고,
전쟁터에서 나가 싸운 선조들의 희생정신이 있기에 국가가 있는 것이고,
서로의 희생정신이 있기에 연인, 부부는 사랑을 느끼며 함께 살아가곤 하니까.
누가 보면 고양이 카페 한번 갔다고 희생정신을 운운하는 게 웃길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이혼을 하고 슬픈 유일한 이유는,
나의 희생정신 부족으로 이렇게 작고 소중한 공주에게 아픔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행복과 평화는 버려두고 공주만 바라보고 더 희생했으면,
아빠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할미, 할비도 손녀딸을 마음껏 보셨을 텐데...
이게 나의 그릇인 것 같다.
핏줄한테만 희생정신이 발휘되는 정도의 사람.
핏줄이 아닌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희생정신은 힘든 게 내 그릇인가 보다.
노핏줄끼리는 희생정신도 어느 정도 Give&Take가 되어야 희생할 맛이 나니까.
아니. 핏줄끼리는 자연스럽게 희생을 주고받으며 사는 게 습성화되어서 그런 걸 지도.
이래서 핏줄은 무섭다. 무한 희생정신 유발자.
부모님한테도 해드릴 수 있을 때 더 잘해야겠다. 나 또한 그들에게 희생정신 유발자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