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 #3 시간이 많아서

by 밍작가

이혼을 하면 갑자기 내 시간이 많아진다.


매일 전화하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와 푸념을 들으며 시간낭비 하지 않아도 되고,

주말에 3~4시간 걸려서 매주 서울로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하루에 1~2시간, 어떤 주말은 절반 정도, 어떤 주말은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짜 내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정을 거치는 7개월여의 기간 동안,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를 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 애매한 시기의 내 마음은 해방감과 혼자 남게 되는 두려움으로 섞여 있었다.

어느 날은 해방감으로 술을 많이 마시고 있었고,

어느 날은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불안정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두 번에 걸친 조정이 끝나갈 때즈음, 생각이 들었다.

'야 너 이렇게 살면 망해.'

'최악엔 네가 재결합하자고 이야기할지도 몰라. 어떤 원고(原告)가 재결합하자고 고개 쑤그리고 들어가냐.'

'정신 차리고 살아.'


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객관적으로 하루를 돌아보니 나에겐 시간이 참 많았다.


좋은 것들로 채워보기 시작했다.

성공하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졌다.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글들을 쓰다 보니,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브런치 작가에 신청을 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니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소중한 시간이 나에게는 많이 있었다.


이혼을 하고 나면, 시간과 돈에 있어서 주도성이 늘어난다.

내 마음대로 하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동안 눈치 보며 하던, 골프와 테니스를 마음껏 칠 수도 있고,

이젠 더 이상 용돈 받으며 살지 않으니, 더 비싼 술과 안주를 자주 먹을 수 있다.

사고 싶은 옷과 신발을 사면서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도 있다.


이혼 전에는 마음대로 취미생활 하고, 먹고 마시며, 사고 싶은 걸 다 사는 삶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골프와 테니스는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고,

술을 많이 마시며 한탄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요, 전혀 생산적이지 않았고,

이쁜 옷과 신발을 걸쳐도, 보여 줄 사람도 없다.


나에게는 해방이지만 누군가가 보기엔 '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해야 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나의 지금이 만족스럽고, 나의 미래가 기대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반성과 채움과 희망을 얻기 위해서.


글을 쓰니까. 시간이 참 잘 갔다.

퇴근하고 나서, 무언가 쓸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했다. 읽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정리해서 쓰려면 또 한두 시간 걸렸다.

이것 만으로도 퇴근 후 저녁시간이 채워졌다.


글을 쓰다 보니, 이웃들이 조금씩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다. 정말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져서.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퇴근 후의 복잡한 심정으로는 글이 잘 써지지가 않았다.

헛 키보드질만 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은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컴퓨터에서 이런저런 윈도우창 열개정도 띄어두고 작업을 하며 버벅이는 시간이 밤이라면, 새벽은

부팅하자마나 쌩쌩 돌아가는 컴퓨터와 같은 느낌이었다.


내 평균 취침 시간은 1시 반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올빼미족으로 살아왔다.

절대 나는 새벽형 인간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다. 참 신기하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 날 술을 마시지 말아야 했다.

13년 넘게 하루에 맥주 한두 캔은 꼭 마시던 나인데.

전 사람은 알콜중독이라고 부르던 나인데.

그런 내가 이제 술을 잘 안 마신다.

아침에 좋은 컨디션으로 양질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참 신기하다.


글을 쓰다 보니 다른 것들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

백화점 갈 시간은 물론이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시간도 없다.

티셔츠 한 장, 신발을 하나 살 때도 여기저기 비교해 가면서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는데,

그런데 시간을 쓸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안 사게 된다.

키보드질을 위한 음식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피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돈 쓰는 걸 좋아하던 내가 돈을 안 쓰게 된다. 참 신기하다.


시간이 많아져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새벽에 일어나게 되고, 술을 안 마시게 되고, 돈을 안 쓰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12 간지가 3번 도는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단기간에 변화하는 나 자신을 처음 본다.

'참 신기하다.'



혼자가 되면 총각 때처럼 마음대로 살 줄 알았다.

눈치 안보며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자유롭게.


하지만 그런 삶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세속적인 행복이 주는 만족감은 너무나 일시적이고,

그 만족감은 영원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프가 안 돼서 스트레스받고,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를 하고,

돈을 많이 써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결국 껍데기에 불과한 만족감이다.


하지만 글을 쓰니까, 꽤나 질이 좋은 장기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다 보면 반성을 하게 된다.

이 반성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지 가이드라인이 되고,

이렇게 보낸 오늘의 하루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이란 희망을 준다.


시간이 많아서 시작한 글쓰기는 이렇게 희망이 되어 나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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