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조금 달라졌지만, 어릴 적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안경을 쓰고, 머리는 덥수룩하거나 정돈되지 않고, 크지 않은 방에서 책 속에 파묻혀서 또 다른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부유한 느낌보다는 가난한 느낌이 들었고,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다양한 직업들을 스크린에서 묘사하지만 특히 작가들은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의 세계에서 글만 쓰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세속적인 변호사, 의사는 있어도 세속적인 작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특히 우리나라에서 심하다. 외국 영화에서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기깔나게 사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당연 작가들만큼은 안되지만,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조금, 아주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우선, 글을 쓰다 보면 세속적일 '여유'가 없다. 세상의 일반적 풍속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것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유행하는 패션을 좇고, 핫플레이스를 가려면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매일 글을 쓰고 살다 보면 다른 곳에 마음 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마음에 '여유'라는 공간을 주고 싶게 된다.
불편한 와이셔츠보다는 편안한 티셔츠, 딱딱한 구두보다는 푹신한 운동화, 시끄럽고 사람이 붐비는 핫플 카페보다는 내가 노트북을 들고 2~3시간 앉아있어도 마음 편할 수 있는 동네 카페가 좋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쓰기가 좋다.
기존에 소위 '힘주고', '한 장 건지려고' 했던 옷차림과 활동들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정말 나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살게 된다.
둘째로, 글쓰기를 통해서 인생의 우선순위가 재정립된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나를 객관화하면서 질문을 던지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서른이 넘어서 진짜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고, 마흔이 넘어서도 숨겨왔던 나의 진짜 꿈을 찾게 해 주는 게 글쓰기이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은' 세속적인 행위규범에 휘둘리던 내가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우선순위에 맞춰서 살게 된다.
글을 쓰고 생각을 하다 보니, 부모님의 희생이 너무나 컸구나를 깨달아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게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고 가족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도 있다.
그리고 보통은 이 우선순위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랑에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그런 보여주기식 사랑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에 가까워진다.
마지막으로, '세속적인 것'이 그냥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이를 '그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냥'만큼 또 다 표현을 할 수 있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글쓰기에 엄청나게 집중을 하는 경우, '그냥'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세속적인 것들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글에 너무 집중해서 그냥 글만 쓰다 보면 세속적인 것 없이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가장 높은 고지에 이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이 세상을 초월한 나만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병든 몸으로 10년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을 마감하는 동안 책을 써낸 니체를 보자. 그에게 세속적인 것들이 필요했을까? '그냥' 필요 없었다. 그는 생각하고 그냥 쓰는 사람이었다. 물론 과유불급이니, 최소한의 현실감각은 필요하다.
글을 쓰다 보면,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세속적인 것들과 이별을 하게 된다.
나는 참 세속적인 사람이었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렸다.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했고, 유명한 식당에 가봐야 했다. 남들이 다 하는 SNS에서도 세속적인 것들을 좇아하며 '뒤처지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가 되고 글을 쓰다 보니 남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유행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며, 유행의 덧없음이 느껴지게 되었고, 밥은 그냥 속이 편하도록 먹게 되었다. SNS에서 더 이상 '보여주기'만을 위한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의미 없어졌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다 보니 신기했다. 이 신기함은 더더욱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나에게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와 내가 이런 면도 있었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네?'
'그냥 나대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하구나.'
'세속적'의 반의어는 고답적, 초월적 같은 말들이 있다.
'속세에 초연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고상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뜻의 '고답적'
'어떠한 한계나 표준, 이해나 자연 따위를 뛰어넘거나 경험과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뜻의 '초월적'
나의 글쓰기는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을 고상하게까지는 여기지는 않고, 경험과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숭고한 표현들까지는 거리가 좀 있지만. 세속적인 것들과 이별을 하고 잊고 지내던 내 '마음'과 '재회'를 하게 해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세속적인 가벼운 것들이 즐겁지가 않기에,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안 하는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기에,
나만의 좋은 글을 통해서 좋은 생각을 전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에...
이렇게 그들과 이별을 하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