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엄습하는 운명들이 시간차로 공격을 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어떤 부모에게 태어났고,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똑똑한지.. 일단 태어나자마자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그 이후엔 어느 학교에 가고, 어느 직장에 취업하고,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지속적이고, 예상치 못하게 운명은 우리를 공격한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공격도 있지만, 어떨 때는 이 싸움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세차다.
이 운명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다. 공격을 다 받아내고 힘이 빠져 헉헉 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느냐. 공격을 받고 나서도 조금씩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공격에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부자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도, 외모가 연예인만큼 빼어나지도, 의대를 갈 수준으로 똑똑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입학하고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평판적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다.
그래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직장의 '현재'는 안정적이지만 '미래'는 불안정하다.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던 결혼생활에서는 갈등이라는 불안정요소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자 하던 나의 인생은 직장생활의 유한함, 이혼과 같은 것들이 공격을 해왔다. 특히 요 몇 년 집중적으로 나를 공격해댔다. 정말 세찼다.
가끔은 이러한 운명의 공격이 너무 힘들어서, 계속 이걸 받아내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공격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더러 했었다.
운명의 공격을 받고 지쳐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자니 내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하루하루 사는 게 재미가 없었고 희망이 없었다. 내가 사는 느낌이 아니라 운명이 대신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결혼생활이 그런 느낌이었다. 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 운명을 거스를까 두려워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생활. 운명의 공격에 방패조차 대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무너지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
큰 공격들이 소강시기를 보일 때즈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특별했던 이 공격이 너무나도 거세서 글로 남겨두려고. 그리고 혹시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런 비슷한 공격을 받게 되면 조금이나마 참고하라고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다. 읽다 보니 힐링이 되었다. 마치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은 장기적인 전쟁이 끝나고 군인들이 심리치료프로그램을 받는 것처럼 큰 공격을 받은 나에게 독서는 힘이 되어주는 치료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치료 프로그램 와중에, 니체의 글 한 조각을 읽게 되었다.
행위가 운명을 낳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무형의 기이한 존재가 아니다.
그 행위를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마지막까지 해냈는가 중도에 포기해 버렸는가,
지켰는가 지키지 않았는가, 받아들였는가 도망쳤는가,
버렸는가 주웠는가와 같은 '행위'가 사건을 만든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음 운명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간다.
그렇기에 다음 순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스스로가 초래한 운명일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또 다른 운명적 사건을 낳는다.
<니체 - 철학자의 서>
운명의 공격을 물리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찾고 있던 나에게 이 글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운명의 공격의 쓴맛을 본 사람일수록 그 의미는 더더욱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의 공격을 받고 있던 사람에게 '운명을 낳는다'라는 말은 관점을 바꾸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행위'라는 글자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내야 하고, 계획도 세워야 하며, 지치지 않고 하는 힘이 필요하다. 즉,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행위를 위해 연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글쓰기는 가장 유익하고, 리스크가 적은 방법이다. 쉽지 않은 글쓰기를 매일하고 습관을 들인다면 다른 것들은 꽤나 쉬워질 수 있다.
이렇게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을 하는 연습을 글쓰기로 하고 있다. 퀄리티는 잘 모르겠으나... 그냥 가끔 이곳에 찾아와서 한 문장이라도 읽고, 공감을 눌러주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분들께 감사할 뿐이다.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내 행동이 매일매일 쌓이게 된다면 어떨까?
10년, 20년 후에도 매일매일 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글쓰기에서 생긴 '행동근육'이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고 행동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이렇게.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10년, 20년 후에도 계속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운명의 공격을 다 막아내는 황금방패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