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감정 : #4 자부심

by 밍작가

30년 정도 각자의 배에서 노를 저어가며 살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다. 배의 종류가 무엇인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흔적이 남아있다. 멋진 유람선일지도 모르고, 상처는 많지만 만선의 꿈을 가진 고기잡이배일지도 모른다. 유람선이든 고기잡이배든 내 눈에는 멋있고 자랑스러워 보이기에 결혼을 결심하고 식장에 들어간다.


자부심은 자신이나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해 가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다. 따라서, 부부간에 자부심이란 서로를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치와 능력'은 다양하다. 외모, 학벌, 직업, 경제력 등.


하지만 이 포인트에서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이 요소들은 일종의 조건에 불과하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수치화 되는 것들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외모, 학벌, 직업, 경제력 등 수치화 되는 것들을 통해서 자부심이 생긴다. 즉,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들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우리 가게는 100년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합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자부심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에 다니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합니다.'


이렇게 자부심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만족감이 아니라 제 3자도 그렇게 느껴야 하는 요소이다.


반면에 나만 느낄 수 있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자부심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나는 배우자의 사랑에 자부심을 느껴.'

'나는 우리 회사가 주는 정서적 편안함에 자부심을 느껴.'


이런 말은 해본적이 있는가?

너무 못들어봐서 그런지 틀린 문장은 아닌데 참 어색하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주관적인 감정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어색한 것이다.

객관적이고 수치화 되는 '가치, 능력'이 자부심을 느끼기에 좋으니까.


이렇게 안타깝게도 상대방의 가치와 능력은 객관화되는 것이고, 우리는 흔히 이것을 '조건'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가치나 능력은 객관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나의 전 사람의 직업은 교사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 조건이 꽤나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보다도 '교사 남편'이 주는 사회적인 가치가 있었다. 왜냐하면 여교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 좋은 배우자 직업'에서 상위 순위에 오르내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떨어진 것 같기는 하다.) 친구들 중에서도 여교사와 결혼한 친구는 흔치 않았다. 간혹 여교사와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꽤나 능력이 좋아 보였다.


결혼 후에도 직장 동료들에게 와이프를 소개할 때, 교사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이곤 했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니, 평생 걱정 없겠느니 등등. 직업에 대한 이미지가 가져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었다.


하지만 전 사람은 나에 대해 별로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은 힘든데 돈은 그에 비해 못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열심히 살았으나, 그녀 수준에서 경제적, 학벌로는 크게 어디 나가서 자랑할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부심을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꽤나 컸다.

이러한 차이가 결혼생활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전 사람은 이혼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에서도 자부심의 유무는 굉장히 큰 요소이다. 자부심을 느낀다면 회사생활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자부심도 없는데 일이 힘들다면 서랍 속에 사직서에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된다.


이렇게 자부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자부심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상대방의 조건에서 얻어지는 자부심만 가지고 살 수 있을까.


객관적인 '가치와 능력'에서 만족감을 주는 결혼생활은 한계가 있다.

그러면 부부 간 자부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부심을 느끼는 대상을 '상대방'에서 '우리'로 바꿔야 한다. 결혼이라는 한 배를 탄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조건만 믿고 살아가기엔 세상이라는 바다는 너무나도 험난하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믿고 같이 노를 저어가면서 가야 한다. 한 사람이 얻는 사회적, 경제적 보상이 아닌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배가 더 멀리 갈 수 있기에.

같이 노를 저어 가다 보면 박자와 힘이 맞지 않아서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서로의 힘과 능력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발생되는 문제와 갈등에 대해서는 바로바로 해결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된 채로 한참을 노를 저어봤자, 힘만 들고 아무런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믿어야 한다. 이 험난한 바다에서 믿을 사람은 한 배에 타고 있는 이 사람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배에 탄 사람은 나와 배우자뿐이다. 부모님이 방해를 해도, 사회적 시선이 방해를 하든, 친구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향해 서로 열심히 노를 저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나'보다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서로 믿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면서 사는 방법이 자부심을 키우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결혼생활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당연히 본인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자랑스러워지려고 노력했다.

이 차이는 갈등을 만들었다.

그 누구도 자부심을 느끼지 않게 했다.


이젠, 자랑스러운 상대방을 위한 사랑스러운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연인, 부부관계 자체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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