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교 가는 길 : 할비 생신

'23. 11. 25.(토)

by 밍작가

공주를 만나는 주말이었다. 공주 할비의 생신이 있는 주말이기도 했다.


화성에 사는 부모님, 용인에 사는 동생내외와 함께 식사할 장소를 정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공주를 데리고 가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하남 IC 인근에 있는 소고기 한정식집을 예약해두었다.


간만에 차를 가지고 왔기에, 공주를 데리고 잠실에서 놀다가 식당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공주의 작은 아빠, 작은엄마도 잠실에서 같이 보기로 했다. 돌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작은 엄마와 작은 아빠였기에, 낯을 가리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했다.


공주를 데리러 집에 가니, 공주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낮잠을 늦게 자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잠실에 가서 뭐라도 하려면 깨워서 데리고 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공주를 깨웠다.


"공주~ 아빠 왔어~"


무슨 꿈을 꾸는지 잠꼬대를 하면서 공주가 정신을 차린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이야기한다.


"안아~안아~"


번쩍 안아준다. 안기기는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품이었다. 그새 또 어색해서인지 찡찡대더니 전 사람에게 가서 안긴다. 달콤한 낮잠을 깨워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시다. 거의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침대에 좋아하는 고양이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헬로키티 베개를 사가지고 갔다. 바로 아이템을 꺼내드니 공주의 표정이 바로 밝아진다.


"양이~~ 양이~~"

"우리 공주 밤에 잠 잘 자라고 아빠가 양이 베개 사 왔어~"

자다가 일어난 공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사준 헬로키티 인형과 비교를 한다. 베개가 더 크니 이건 아빠냥이고, 인형은 조금 작기에 엄마냥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큰 동물은 '아빠 00', 그보다 작은 동물은 '엄마 00'이라고 하면서 아빠와 엄마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는 시기였다. 더 큰 동물은 항상 '아빠 00'이었다.


다행히, 등장이 어색하고 우울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이템의 힘은 역시 좋다.


이쁜 옷을 입혀서 잠실로 데리고 나간다. 두 돌도 안되었지만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고르는 우리 공주, 지난번에 날씨가 추워지기에 사다준 민트색 패딩이 요새 제일 좋아하는 옷이라고 한다. 그것만 입는다고..(패션 센스는 내가 전 사람보다 나은 것 같다) 참 뿌듯하다.


나 혼자 공주를 차에 태워서 가는 건 사실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뒤에서 공주가 터져버리면 어쩔 수가 없기에. 그래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량용 아이패드 거치대를 사서 조수석 뒤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그 좋아하던 아기상어를 틀어주었다. 하지만, 판단미스였다. 공주는 아기상어를 졸업했다. 더 이상 아기상어가 재미있지 않은 21개월이었다.


그래서인지 잠실을 가는 내내 표정이 뚱하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 좋아하던 영상도 잘 보지 않는다.

'음.. 오늘 쉽지 않겠는데?'라고 조금 걱정을 하며 잠실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작은 아빠, 작은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공주 100일 때, 돌 때 와서 같이 사진을 찍어주던 착한 작은 아빠 내외. 혹시나 하고 기대하였으나, 역시나 공주는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공주~ 오랜만이야~ 작은 아빠야~~"


친한 척을 하는 작은 아빠 내외에게 공주는 애매한 표정에 이은 울음을 선사해 주었다.

"애앵~~~~"

잠실이 떠나가도록 울어대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동생네라서 그런지 공주가 많이 어색해했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표를 끊어서 아쿠아리움에 들어갔다. 한 300일 정도 되었을 때, 혼자 공주를 데리고 아쿠아리움에 갔던 적이 있었다. 이혼을 하기 전 본인은 주중에 고생하니 주말에 어디라도 데리고 다녀오라고 잔소리를 듣던 시절, 호기롭게 다녀왔던 아쿠아리움이었다. 나도 공주 데리고 혼자서 멀리까지 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했다. 쨋든, 우리 공주님은 두 돌도 안되어서 두 번째 아쿠아리움 방문이시다.

아쿠아리움에는 벨루가부터 시작해서 상어, 물개 등 정말 볼거리가 많다. 책에서만 보던 물고기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데려갔지만 공주는 물고기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언제나 공주의 마음속 No.1은 고양이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쁜 물고기와 집채만 한 벨루가에도 큰 감흥은 없었다.


구경하는 내내 작은 아빠 내외랑은 친해지지 못했다. 롯데몰 앞에 있는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작은 아빠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그나마 작은 아빠가 건네는 과자봉지에는 마지못해 손을 넣고 꺼내는 정도의 도도함만 보여주는 그녀였다.

스크린샷 2023-11-27 오전 5.51.02.png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가는 길에 뒷자리에서 작은 아빠가 고양이 유튜브를 틀어주었다. 그때 알았다. 더 이상 핑크퐁은 공주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을. 크림히어로즈 채널에 나오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자마자 반응을 한다.


"양이~양이~~" 하면서 텐션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주 신난다. 갑자기 작은 아빠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식당에 도착하니 공주가 제일 좋아하는 할미가 기다리고 있다. 보자마자 할미한테 가서 푹 앵기는 공주. 많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키운 정도 참 무섭다.


할미와 극적인 조우를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공주가 달라졌다. 그렇게 먹는 걸 힘들어했었는데, 이제는 전투적으로 먹는다. 조그마한 손으로 든 숟가락이 한시도 쉬지 않는다. 고기도, 밥도, 반찬도 아주 잘 먹는다. 두 돌도 안된 공주가 맛있는 건 아는 것 같다. 고기도 맛있었고, 좋은 쌀로 지어서 그런지 밥도 맛있었는데, 참 잘 먹는다.


이제 말도 제법 늘어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곧잘 따라 한다. 단어뿐 아니라 가끔은 어설프게 문장도 구사한다. 그 어려운 '작은 아빠, 작은 엄마'라는 단어도 결국 성공해 냈다. 조만간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 차 안에서 잠바를 입고 있기에 "갑갑하겠네"라는 할미의 말에 "갑가패~ 갑가패~"라고 이야기한다. 공주 앞에서 말 조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주!! 아빠랑 아쿠 가서 좋았어?"

"웅"

"얼마나 좋았어?"

"마니!"

"나중에 또 가자~"

"키카!(?)"

"응.. 키카? 공주 키카 가고 싶어?"

"웅!"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에 아빠랑 카카 가자!"

공주가 배시시 웃는다.

전 사람이 키카에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해둬서 그런지, 키즈카페에 갈 기대를 했었나 보다.


원래 계획에 없던 일요일 아침 면교지만,

공주가 좋은 걸 해주기 위해,

같이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비 얼굴 안 잊게 하기 위해,

다음번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기 위해

내일 아침 키카에 갈 약속을 하고 공주를 데려다주고 온다.


그래도 언제나 바이바이는 쿨하다.

"아빠랑 할미 갈게~ 안녕~"

조막만 한 손을 흔들며 쿨하게 보내준다.


꽤나 추운 11월 말의 어느 날이었지만, 이번 겨울 들어서 가장 마음 따듯한 날이었다.

사랑을 주니, 어떻게 하면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키카만 데리고 다니며 살 수는 없으니까.

공주가 크면 키카 말고 더 좋은 곳을 많이 데리고 다녀야 할 테니까.


더 큰 동물을 보면 '아빠 00'이라고 이야기하는 우리 공주,

정말 더 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 공주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별의 감정 : #8 흥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