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교 가는 길 : 처음 하는 약속

'23. 11. 26. (일)

by 밍작가

"나중에 아쿠아리움 또 가자~"

"키카!(?)"

"응.. 키카? 우리 공주 키카 가고 싶어?"

"웅!"

"알겠어. 그럼 내일 아침에 아빠랑 키카 가자!"


이렇게 660일 공주와 아빠는 처음으로 '약속'이라는 것을 했다.

원래는 일요일 오전에 일찍 숙소로 내려와서 조금 쉬려고 했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장거리 운전은 힘들기에... 하지만 공주와의 약속을 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예정에 없던 면교였다.


키즈카페 오픈시간에 맞춰서 공주를 데리러 갔다. 공주는 이쁘게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공주도 어제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선물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아도 애비를 너무나도 반겨주었다. 그렇게 한창 들떠있는 공주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오픈런을 했다.


전 사람은 공주를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지는 않는다. 주로 집에서 데리고 논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키즈카페는 공주와 나를 '즐거움'으로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들어가자마자 일단 얌전한 척 기차놀이 장난감에 앉아서 조막만 한 손으로 이리저리 워밍업을 시작한다. 적응이 된 공주는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한다. 볼풀에도 들어갔다가, 방방도 탔다가, 회전목마에도 태워본다.


2주마다 공주를 보면 금세 커버린 공주의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 더 이상 우리 공주는 애기가 아닌 것 같다. 피아노 치는 것은 어디서 보았는지, 몸을 흔들어가면서 건반을 눌러댄다.

또 전 사람이 아침에 화장하고 나가는 것을 보았는지, 장난감 화장대 앞에서 화장품을 지 입술에 이리저리 바르는 시늉을 한다. 여자들이 립스틱을 바르는 그 입모양을 흉내 내면서.

삽질하는 것을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장난감 삽으로 작은 큐브를 퍼다가 능숙하게 옮겨 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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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창 놀다가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고는 아빠에게 달려와 폭삭 앵기는 고난이도 귀염뽀짝 스킬을 보여준다. 하. 2주에 한 번씩 보는 애비에게 이런 스킬은 너무 치명적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 같다.


"공주 배 안 고파? 우리 간식 먹을까?"

"아니야!"

노느냐고 배도 안 고프단다. 그렇게 두 시간을 가득 채워서 키즈카페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다녔다. 슬슬 집에 데려다줄 시간이 되었다.


"공주 집에 가야지!"

"아니야!"

"가서 엄마랑 맘마 먹어야지~"

잠시 생각하더니 순순히 외투를 입히라고 팔을 살짝 들어준다. 엄마가 좋긴 좋은가보다.


공주를 집에 데리고 간다. 전 사람이 공주에게 물어본다.

"공주 재미있었어?

"웅! 마니!"

"그러게 머리가 헝클어진걸 보니 정말 재미있게 놀았나 보네~"

"웅!"


생각보다 오랫동안 공주를 데리고 놀아서 기분이 좋은(?) 전 사람이 갑자기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한다. 어차피 공주 먹이게 고기를 구울 거라면서.


공주를 더 보고 싶기도 하고, 어차피 내려가면서 휴게소에서 사 먹어야 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공주와 놀러 갔다가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면 몰라도,

공주를 보러 왔다가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켜 먹으면 몰라도,

그 집에서 그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는 건 꽤나 이상한 기분이 들 것을 알기에.


"아니야. 괜찮아. 내려가면서 먹을게."

"공주. 아빠 갈게. 잘 지내고 있어! 다음에 아빠랑 더 재미있는데 가자^^"

"웅!"

"안녕~"

(오늘도 역시 쿨하게 손을 흔들며 보내준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이 한 시간은 더 멀어지고, 조금 더 피곤했지만,

우리 공주와 처음으로 약속을 하고, 지키고. 좋은 추억을 한가득 만들어서 참 좋았다.


우리 공주 벌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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