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외로울 때가 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외로우면 차라리 이해가 쉽다.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외로움이 생기는 것이고, 물리적 문제가 해결되면 외롭지 않을 것이란 희망과 믿음이 있으니까. 하지만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그랬고 아마 누군가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동상이몽"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느낌이라는 말이다. 부부간 동상이몽이 지속되다 보면 서로의 감정적인 소통이 제한되고, 장기화되면 소외감과 고립감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느낌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끔 하고 자연스레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고 정서적, 신체적인 악영향을 초래한다. 최종적으로는 자기반성과 조정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이게 안되면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외로움이란 감정은 너무나도 무섭다.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하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며, 사랑의 감정을 빼앗아 간다. 그렇기에 한 이불을 덮는 부부간에는 서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통해야 한다. 한 이불을 덮는 사람끼리는 한 이불을 덮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소통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그 기대치에 걸맞은 소통을 해야 한다.
적어도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각 개인이 소통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루 이틀은 편할지 모르면 나중에는 외로워지기 딱 좋은 방법이다. 아무리 싫어도 등을 돌리지는 말자. 적어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서 얼굴의 절반이라도 상대방에게 보여주자. 등에 대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같이 사는 건 아닐 테니까. 등 뒤에선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르기에.
같은 시간에 누워있어야 한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는 내가 눕고 싶지 않더라도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외로움의 감정이 느껴지려고 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와달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육아, 일 등 다양한 이유로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다 보면 어느새 외로움이 아주 많이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쌓여있는 외로움을 녹이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최악에는 노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 있을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도 외로웠고 정서적으로도 외로웠던 결혼생활이었다. 나도 그 사람도 모두 그랬다.
감정적으로 예민하기에 외로움을 잘 느끼던 나는 외로움을 이야기했으나, 돌아온 건 상대방의 뒷모습이었다. 내 외로움은 마음속에서 고착화되어갔다.
평소에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던 그 사람은 아이를 낳고 나니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혼자 고생을 한다는데서 오는 외로움. 하지만 이 외로움은 금세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불만, 불신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나와 우리 가족들 전체로 확대되었다.
서로의 외로움을 잘 달래지 못하니 각자의 외로움은 무섭게 자라나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 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외로우면 이야기하자. 솔직하게. 쪽팔리거 없으니까.
사랑한다면 그를 케어해 주기 위해 희생을 해야 하고, 가끔은 받기도 해야 한다.
"나 외로워..." 이 간단한 이야기를 못해서 도착하는 불신의 종착지는 너무나도 안타깝기에.
이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이불을 덮는 사람끼리 이 외로움에 대해서 방관하거나 무시한다면 그 관계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외로움이 진화하여 더 나쁜 감정으로 그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