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결혼식, 나의 이혼식'
이 날 나는 분노했었다.
그리고 이 분노가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화산처럼 폭발한 분노는 그나마 꾹꾹 눌러 담고 살았던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거대한 지진이 되었다. 시뻘건 용암이 마음속에서 흐르며 전 사람과 함께한 추억을 시꺼멓게 물들였고, 폭발로 인해 발생한 뿌연 수증기는 한 치 앞을 안 보이게 만들었다.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와 가스로 인해 기후가 변화하고, 한 동안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된다. 이처럼 마음속에 심각한 변화가 생기게 되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조금은 척박한 마음속에서 살고 있다.
이혼뿐 아닌, 모든 갈등은 '분노'를 통해서 표출이 되고, 이 '분노'의 피해는 너무나도 크다. 부부뿐 아니라 모든 사람 사이에서 절대로 막아야만 하는 감정이다. 끝을 볼 만큼 너무나도 피해가 큰 감정이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은 마그마, 가스 등이 지하에서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표면을 뚫고 폭발하는 현상이다. 분노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분노가 생기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긴장, 스트레스, 불만 등이 쌓이다 보니 터져버린다. 분노의 감정을 막기 위해서는 뜨거운 마음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단단한 지표면을 유지해야 한다.
'아 열받아..'가 쌓이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의 분노의 온도는 올라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열을 내려야'한다. 열을 내리기 위해서는 서로 마음을 열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각자의 그 좁은 마음속에서 담아만 두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온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밖으로 꺼내어서 온도를 내려줘야 한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서로 이야기하며 해결해야 하는 이유이다. 참으면 언젠가 터진다.
마음속의 기대치를 조정해야 한다. 마그마는 보통 700~1200°C 사이에서 폭발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도 폭발하는 정도가 다르다. 이는 서로에 대한 기대치로 인해 정해지곤 한다. 너무 기대치가 높으면 700°C 가 아니라 500°C 에서도 터질 수가 있다. 더 높은 온도에서 터지는 것에 비해서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겠지만, 일단 터지는 것은 좋지 않기에 이 기대치 온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 기대치 온도를 높이는 것도 좋지 않다. 1500°C 에서 터질 때까지 가만히 두고 있으면 이미 마음속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뻘건 상태일 테니까. 적정선의 기대치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대치가 비슷해야 한다. 기대치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함께 지내다 보면 기대치가 낮은 사람이 너무나도 힘들다.
서로에 대한 '신뢰'의 정도는 지표면의 두께로 표현될 수 있다. 신뢰가 두터우면 아무리 온도가 높아도 잘 터지지 않는다. 화가 나서 조금 온도가 올라갈지는 몰라도 결코 터지는 일은 없다.
영원히 두터운 신뢰는 없다. 마음속의 마그마가 조금씩 지표면을 얕게 만들듯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부간의 갈등은 조금씩 기존의 신뢰를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포장공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지하 속에서 신뢰는 조금씩 얕아질 수 있기에 지상에서 새로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노력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신뢰를 구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쪽만 두터운 것은 바람직한 신뢰의 구축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 터지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도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장공사의 두께는 일정해야 한다. 일관된 말과 행동을 통해서 평평하고 보기 좋게 포장해야 한다. 예상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은 필연적으로 약한 부분을 만들게 되고,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서 언젠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표면에 균열이나 크랙이 간 부분은 지속적으로 확인을 하고 보수를 해줘야 한다.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본인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균열과 크랙을 보여줘야 한다. 보여주지 않았다가 터지는 것보다는 바로바로 고치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마음속 분노의 온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단단한 마음 만드려고 노력한다면 너무나도 치명적인 '분노'를 막을 수 있다. 이 분노를 막아야지만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마음속의 답답함으로 인해 온도는 지속적으로 올라갔지만, 내가 이렇게 뜨겁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이야기해 봤자 온도가 더 올라가기에 그냥 참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음속의 온도는 1200°C 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필 그날에 터져버리게 된 것이다.
반면에, 전 사람은 나에게 지속적으로 이렇게 온도가 올라간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나는 온도를 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당장 내려봤자, 예상치 못한 이유로 인해 또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냥 방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적정 온도와 적당한 지표면의 두께를 유지하며 근근이 살다보니 터져버렸다.
전 사람은 자주 터졌기에 사고 후 수습도 잘하는 편이었다. 터진 다음날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인처럼 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터지면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잘 터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기에 크게 터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서인지 한 번 터지니 너무나도 크게 터졌다. 마음속은 흘러내리는 용암처럼 분노가 가득 찼었고, 화산 후 발생한 지진은 내 마음을 계속 흔들어 댔으며, 시커먼 수증기는 내 눈앞을 가렸다.
한 번 터졌다고 해서 바로 다 엎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성의 끈을 최대한 잡아서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공주도 있었기에. 하지만 한 번 터져버린 이 마음은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지속적으로 끓어오르게 하는 소통의 부재와 갈등은 지속적으로 터지게 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매일 지진이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아직도 간간히 여진은 발생한다.
가끔 흔들리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여진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분노할 일이 없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물론, 분노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한 번 터져버린 나의 분노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던 그 사람의 분노가 함께 지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분노하지 않도록 넓은 마음을 만들고,
조금 뜨거워지더라도 열이 방출될 수 있는 공기구멍도 좀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볼 수 있는 힘도 키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분노가 폭발했던 이 마음을
다시 사람이 살만한 좋은 땅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