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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Mar 15. 2021

특별히 잘 하는게 없어도 로스쿨 가도 될까요?

(4) 특별한 외국어능력, 자격증 없이 로스쿨에서 살아남기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 리트 고득점, (2) 일정 수준의 영어실력, (3) 학부성적이 요구된다. 리트 점수는 바로 이전 글에서 대략적인 합격점에 대해 설명했다(사실, 리트 점수는 가중치가 다소 높은 학교가 있고, 그렇지 않은 학교가 있다. 본인이 리트 점수가 뛰어나게 높거나, 다른 둘에 비해 너무 낮다면 그 가중치를 잘 계산해보고 지원할 학교를 고르면 된다) .


이번에는 영어와 자격증 그 밖에도 특별한 경력과 같이 로스쿨에서 성공하거나, 또는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특별히 잘하는 무언가가 필요한지 설명드리고 싶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로스쿨에서는 공부만 잘하면 됐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영어, 또는 그 외의 언어 꼭 잘할 필요 없다. 


내가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로스쿨 지원에 필요한 암묵적인 토익(TOEIC) 최저 점수는 930점이었다. (아직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특별히 어디서 길게 살고 온 것은 아닌데, 어릴 때 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학부에서 졸업성적으로 토익 점수를 요구했었기 때문에 985점의 토익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해외에서의 인턴 경험이나 통역 인턴 경험이 있어 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 모두 별 문제가 없는 편이었다. 지금까지 인턴 지원이나, 회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영어실력은 꽤 도움이 됐었기 때문에 나는 로스쿨의 지원이나 나중에 취직을 할 때에도 내 영어실력이 화려하게 빛을 발할 줄 알았다.


일단 로스쿨에 입학하니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로스쿨 3년 동안은 영어를 쓸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로스쿨 성적을 잘 받거나 하는 일에 영어를 잘하는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취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로스쿨에서 성적이 제일 좋은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재판연구원(로클럭) 시험이나, 검찰 심화 과목과는 영어나 다른 외국어가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공부를 잘하면 자연스럽게 재판연구원 시험을 치거나, 검찰 심화 과목을 듣게 된다. 로펌에 취업을 할 때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외국과 교류하는 업무를 하는 로펌이 썩 많지는 않아서, 영어를 잘한다고 좋은 로펌에 가는 건 아니었다. 대형로펌에는 굳이 한국변호사가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 미국변호사가 일해주니 대충, 서류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 토익 930점 정도의 실력이기만 해도 일하기엔 충분하다.


만약 '나는 꼭 국제법무를 하고 싶어', '나는 글로벌기업의 사내변호사가 될거야'하는게 아니라면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 자체를 걱정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영어실력을 주요한 평가지표로 보는 곳은 로펌이 아닌 회사이다. 사내변호사를 뽑을 때는 영어실력을 상대적으로 꼭 필요한 지표로 보는 곳들이 많다. 뒤집어 말하자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이 지겹고 집에 가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송무 바닥에서 지칠 때 "아, 사내변 할래"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 정도 더 있다는 것 뿐이다. 


내가 아는 변호사님 중에는 나이나 로스쿨을 뛰어 넘어 일본어를 현지인처럼 잘하고, 일본 로펌에서의 꽤 장기의 근무 경험이 있는 분이 한 분 계신데, 이 분은 이 일본어 실력과 현지에서의 법률자문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의 꽤 좋은 로펌에 스카웃됐다. 그러니까, 외국어 실력이 유의미할 정도로 도움이 되려면 그 언어로 변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할 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상대적으로 장기의 법무 경험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로스쿨생 50명 중에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930점 정도의 어중간한 영어 실력이 입학 원서를 낼 때 성적증명서에만 적혀있으면 되고, 그 이후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냥, 로스쿨에서는 공부만 잘해도 충분하다



실무 경험과 자격증, 도움이 될까?


나는 실무경험과 자격증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일단, 변호사로 일하는데는 변호사 자격 말고는 특별한 자격이나 능력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 자격이나 경력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치 이상의 로펌에 입사할 수 있다. 


공인회계사(KICPA) 자격증과 2년 이상의 실무 경험

공인회계사 자격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굳이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휴학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공인회계사 자격이 취업에 도움이 되려면, 적어도 2-3년의 실무경험이 필요하다. 자격증 취득 이후 2-3년의 회계법인에서의 실무경험 덕을 보는 사람은 더러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 이후 바로 로스쿨에 입학한 경우,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는 취업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런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로스쿨 성적이 보장된다면 로스쿨 졸업 후 자기가 다니던 대형 회계법인에 TAX 팀에 다시 입사하기도 하고, 대형로펌에 입사하기도 한다. 


공대출신이거나, 건설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면, 건설소송을 하는 대형로펌을 노려볼 수 있다. 

아무래도 민사소송 중에서 가장 소가가 높고 복잡한 것이 있다면 건설소송일거다. 건설소송은 도산하는 회사도 많아서 언제나 수요가 풍족하다. 하자보수나 재건축, 재개발, 건설 분쟁은 언제나 좋은, 실무에 빠삭한 + 건설회사 직원들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제약회사 분쟁이 꽤 있어서,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좋다.

대형로펌에서 맡고 있는 제약회사만 하더라도 꽤 되고, 이로 인한 분쟁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이 있다면, 꽤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 


내가 본 약대 졸업생들은 다들 로스쿨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약대는 학부 내내 공부하는 버릇이 들어있는 편이라 로스쿨 공부도 참 독하고 무섭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암기하는 시험을 쳐왔기 때문인지, 이 친구들은 로스쿨 성적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나는 이 글을 읽는 회사원분들이, 그래서 조금 더 독한 마음을 가지고 로스쿨에 와주셨으면 한다. 왜냐면 법학 공부라는 것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힘들고 공부 자체에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로스쿨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 잠깐 스터디를 하고, 수업을 듣고, 저녁을 먹은 후에 자기 공부를 한다. 대개 순수하게 나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에 5시간 이상이어야, 우리는 그나마 변호사시험 준비를 위해서 필요한 내용들을 3년 동안 머리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무거운 엉덩이를 가질수록, 단순할수록 로스쿨에서는 좀 더 쉽게 살아남을 수 있다

로스쿨 이후의 취업이 걱정되어 다른 경험이나 경력을 쌓는다거나, 그걸 위해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기에는 우리의 3년은 너무 짧다. 




오늘 글에서는 아주 소수의 정말 "경력자"를 제외하고 로스쿨에서 중요한 건 공부 뿐이라는걸 얘기하고 싶었다. 다음 글에서는 학부를 다니는 것처럼 헐렁하게 로스쿨에 다니느라 1년 6개월을 허비하고 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 나의 1학년 생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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