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부분 그냥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짐을 가지고 학교 다녀요
내가 회사에서 꽤 존경하던 임원분께서 내가 로스쿨에 입학한다고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하니, 따로 자리를 마련해 같이 밥을 먹던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임원분께서는 나에게 "학비가 대충 한 학기에 1,000만원 씩이라고 계산하고, 3년이니 여섯 학기, 기타 생활비를 최소로 계산해서 합치면 1억이면 변호사 자격증 사는거네? 나쁘지 않다."라고 하셨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제도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고, 또 사법고시와 병행될 때라 로스쿨은 돈 좀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가서 놀고 먹으면서 변호사자격증을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강할 때여서 아마 이런 말을 하셨으리라.
과연, 로스쿨에서는 1억 정도의 여유가 있으면 충분히 변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건지,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정도인지, 정말로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로스쿨에는 집안 좋은 사람이 차고 넘쳐나는지 하나씩 설명 드리고 싶다.
1. 실제 학비, 비싼편인 건 맞다.
로스쿨의 반은 아마 국립대일거다. 지방 거점대학들이 대부분 국립대이고 상대적으로 국립대들은 사립대보다 당연히 학비가 싼 편이다. 하지만 학비가 궁금하실 학교는 아무래도 서울의 사립대가 아닐까. 나는 서울 사립대 중 그나마 학비가 비싸지 않은 로스쿨을 졸업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2013년 부터 2015년까지 우리 학교의 학비는 거의 변함 없이 한 학기에 800만원 대였다. 하지만 학비가 비싼 다른 서울의 사립대들은 보통 당시에도 한 학기에 학비가 1,000만원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학비만 하더라도 3년 동안 6,000만원 가까이 든다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생활비, 책값, 강의료 기타 필요한 비용 등을 여유있게 지불하려면 현금으로 1억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로스쿨에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은 재학생의 70-80% 정도에게 장학금으로 한 학기에 200만원 ~ 300만원 수준을 지원한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거의 한 학기에 500만 ~ 600만원 정도의 학비를 내고 로스쿨을 다녔는데, 사실 학부 때 내던 등록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너무 비싸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학교에 다녔던 불효녀이기도 하다(성적 우수자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 100%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한 학년에 2-3명 정도는 있는 편이니, 사실 생활비 정도만 조달이 가능하다면 무료로 로스쿨을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니까 패스). 그리고 로스쿨에서 제공하는 저 장학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 그 장학금이 필요 없는 리얼 금수저들이기 때문에 나름 공평한(?) 장학제도라고 생각했다.
처지가 나와 비슷한 재학생 70 ~ 80% 들은 일단 학비를 학교에 내고 학기 중에 학교에서 200만 ~ 300만원의 장학금을 돌려 받으면 그걸로 생활비를 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자녀를 7년 동안 대학에 보낸다 정도로 생각한다면 사실 학비가 그렇게 말도 못하게 비싸다고도 보기 어렵고,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이 다 말도 못하게 금수저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친구들은 다들 비슷한 중산층 집안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2. 그 외에 들어가는 비용?
그 외에 들어가는 비용은 책값과 밥값, 기숙사비 말고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건 돌려서 말하면 로스쿨 생활은 공부하는 것과 먹는 것, 자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기출문제집이나 교재 값이 학기 초에 15만원 ~ 20만원 들기는 하는데, 그거야 학부 때도 그랬던 거고, 인터넷 강의도 사실 같이 스터디 하는 친구들 끼리 돈 모아서 사고 같이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교육비라고는 거의 들 게 없었다(학교 강의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교육은 필요하다. 그치만 친구들이 나눠서 내기 때문에 생각보다 드는 비용 자체가 적다는 의미이다.)
어디 나가서 맛있는거 먹을 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 밥값도 대부분 구내식당, 아니면 교수식당이었어서 한끼에 5천원을 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학교 주변에 나가서 먹어도 얼마 안됐었다.
기숙사비야 학교마다 다르기도 하고, 집에서 다니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까 필수적인 비용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로스쿨에 대한 편견을 조금 깨고 싶었다. 로스쿨러들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3년 이라는 시간 동안 학비를 더 내야 하고, 돈을 벌지 않고 살아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는 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학위를 돈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로스쿨의 3년 동안의 학사과정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실제로는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사람도 매 학년마다 수 명은 있을 정도로 꽤 팍팍하다. 서울대에는 성적 때문에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지 않고 한학기, 한 학년을 더 공부하는 휴학생도 정말 많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밤을 새 본 것이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26년 인생 동안 딱 하루였는데, 로스쿨에서는 세지도 못할 만큼 시험 공부 때문에 많은 밤을 새웠다. 밤을 새서도 시험공부를 제대로 못마쳐서 속으로는 엉엉 울면서 시험장에 들어간 날들도 열 손이 모자랄 정도이다.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이렇게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을 들일 걸 예상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니 적어도 예산이라도 잡고 공부를 시작하지만, 언제 붙을 지 모르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야 말로 진정 금수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 실제로 로스쿨에는 내 동기만 하더라도 10년 넘게 사법시험을 준비해온 사람이 10명이 넘었다. 와. 10년 넘게 아무 벌이 없이 공부해도 되는 사람들이 진짜 금수저 아닌가.
오히려 로스쿨은 시스템화 되어 있다 보니 장학제도도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전형도 학교 별로 꽤 다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3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다. 나는 그래서 직장인이라면 마이너스 통장 다 당겨서라도 로스쿨 가는거, 응원한다. 자기 통장의 마이너스를 매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부담이면 공부도 더 잘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평범한 로스쿨 학생,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