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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Apr 01. 2021

반 이상이 합격하는 변호사시험, 쉬운거 아닌가?

(6) 놀면서 자격증을 딴다는 로스쿨에 대한 오해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대충 50% 정도 된다고 하는데, 설마 내가 저 반 안에 못들겠어, 변호사시험만 합격하면 되는데 나도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면서 3년 쉰다고 생각하고 학교 다니면 되겠지, 엄청나게 로스쿨을 쉽게 생각하고 입학했다. 


나는 봄날에 꽃비 맞으면서 노트북 들고 나가서 과제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로스쿨이 시험 전 2-3주만 빡세게 공부해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던 내 학부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고 있었던 AICPA(미국회계사)시험을 1학년 여름방학에 취득하는걸 목표로 학교 공부와 병행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내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었다. 



1. 학교에서 상위 50% 이상의 성적을 유지한다는 것


나는 5기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1차를 합격한 이후 로스쿨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학교의 정원은 50명이었는데, 이 중 25~30명 정도가 학부 전공이 법학과였고, 그 중 사법시험 1차를 합격했다가 최종합격하지 못하고 로스쿨에 입학한 경우(2차생)가 7-8명 정도였다. 50명의 정원 중 수업이나 부전공, 복수전공 등 어떤 식으로도 법학을 접해보지조차 못한 사람은 5-6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1학년 1학기의 성적은 불공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다가 한 번은 정말 울뻔 했는데, 나는 아무리 100번을 시간 들여 읽고 필사를 해도 모르겠는 민법교과서를 내 옆자리에 앉은 2차생 동기 오빠가 연필도 들지 않고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고만 있을 때였다. 2차생에게 로스쿨 1학년 1학기 민법 1 시험이 얼마나 별 거 아니었겠나.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1학년 1학기의 성적은 1학기를 거치고 2학기에 접어들면서 뒤집히기 시작한다. 로스쿨에 입학해 한 학기 동안 피 땀 눈물 흘리며 공부한 공부벌레들이 치고 올라가기 시작하는거다. 사실 그래도 1학년 까지는 2차생들의 성적을 꺾기는 어렵다.  


날고 기는 공부벌레들만 모이는 곳이 로스쿨이다. 우등졸업이 아닌 동기들을 찾기 어려웠다. 서울대에 입학한 전교 1등이 서울대에 입학해보니 다들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다더라, 그래서 처음 좌절을 맛봤다라는 얘길 많이하는데, 로스쿨도 그랬다. 다들 대학교에서, 학부에서는 날고 기는 사람들을 모아놨으니, 그런 사람들 속에서 죽도록 경쟁하면서 상위 50%안에 드는 건 사실 뼈를 깎을 만큼 힘든 일이다. 


때로는 숫자가 이렇게 큰 왜곡을 한다. 만약 당신이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저 그런 사람들 속에서 상위 50%안에 들어야 하는게 아니라 다들 피눈물 흘려가면서 공부하는데도 그 중에서도 상위 50%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2. 변호사시험은 그래도 정직하다. 


변호사시험은 매해 한 1200명 정도를 합격자로 선발하는 것 같다. 내가 합격할 5회 때만 하더라도 입학정원 대비 50%를 조금 넘는 비율이었던 것 같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입학정원 50명 중 한 두명은 다음 학년으로 진급을 하지 못하고(유급), 두번에 걸쳐 치르는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대략 5-6명 정도)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한 해에 3-5명 정도는 휴학을 하거나 개인 사정(출산이나 결혼 등)으로 변호사시험에 응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매 해 30명 후반 정도가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는데, 우리 기수에서는 30명 정도가 합격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도 변호사시험을 치르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실패와 낙오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변호사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만한 사람들이다. 학교를 다니다가 '저 사람은 변호사가 되면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이 한 번에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성실하게 공부했고, 그럴만큼 똑똑한 사람들이다. 


상위 몇 명을 골라 뽑는 사법시험이랑은 다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운이 좋아서라든가 대충 공부했는데도 불구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경우는 없었다. 합격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3년을 갈아서 공부에 바친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변호사시험은 점수가 공개되는 시험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득점을 한 경우에 채용절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우는 것 만큼은 자신있다고 생각한 나는 1학년 1학기에 처음으로 C라는 학점을 받아보고 좌절했었다. 세상에, 내가 이런 학점을 받다니. 그렇다고 공부를 안한 것도 아닌데. 밤을 새면서 공부했는데. 1학년 1학기 점수를 받아 본 후, 그래도 미련이 남을지도 모르는 AICPA 시험을 8월에 마치고서는 나는 바로 전격 로스쿨생 모드로 돌입했다. 그리고 그 때 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로스쿨에서의 공부는 그동안 학부에서의 공부와 다르다. 나처럼 학부에서 시험기간에 잠깐 공부하고 성적을 잘 받아온 사람들이 가장 큰 오해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수업을 잘 듣고 학교 시험 성적을 잘 받아온 모범생들은 교수님이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공부할 양만 많은 이 로스쿨의 공부, 누가 어떻게 해야 잘하는건지 알려주지도 않는 이 로스쿨에서의 공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로스쿨에서의 공부는 학교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학교 진도와는 상관 없이 변호사시험을 치르는데 필요한 모든 과목을 차근차근 혼자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법시험과도 다르다. 사법시험은 객관식 시험인 1차 준비를 할 때 말도 안되는 연도를 외우고 판례를 달달 외울 정도로 디테일에게 공부를 했다가, 1차에 합격하면 완전히 공부 방식을 바꾸어 서술형으로 주어진 문제를 푸는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연수원에서 실전 서면 작성시험을 준비하지만 로스쿨에서는 이 모든 준비를 3년 동안 한꺼번에 해야하고, 변호사시험에는 세 가지 모드의 시험 준비를 제한된 시간에 한꺼번에 해야한다. 이 모든 공부양이 3년에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좋지 않은 이상 객관식, 서술형, 기록형 문제에서 골고루 고득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로스쿨에서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정규 교과과정이 대부분 3학년 1학기 까지 이어진다는 걸 생각하면(이 말은 3학년 1학기 까지 새로운 과목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시험을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3학년 여름방학부터 변호사시험인 다음해 1월까지 7개월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3년 동안 1억의 학비를 들여 변호사 자격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입학한 나는 사실 로스쿨이나 변호사라는 직업을 조금 얕보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 것도 꽤 오래였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입학정원 대비 합격률만을 보고 가뭄에서 콩나듯 소수만 합격하던 사법시험에 비해 변호사시험이 지나치게 간단하고 쉬울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는 그동안 난무하던 '고시폐인'을 없앴을 뿐 3년의 기간 동안 자신을 공부지옥에 밀어 넣도록 하는 일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변호사시험 합격률만을 보고 '로스쿨 준비해봐야겠네?', '로스쿨 별 거 아니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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