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들을 위한 섣부른 위로

미안하게도 세상에는 그 '바퀴'가 필요한 회사 훨씬 많아요, '핸들'님

by 밍지뉴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재재'님이 출연했다.

무려 4년의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90년 생이라고 하니 나랑 학번은 얼마 차이 안나겠지만 내가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취업시장이라는 건 한 번도 나아진 적이 없으니 나보다 나은 취업 시즌을 거쳤을리는 없었겠지.


내 기억에도 취업 준비는 정말로 힘들었다. 준비라는 게 뭔지 알지도 못한 채 준비를 시작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어떤 회사가 어떤 사람을 선호하는지 내가 갖춘 게 뭔지 조차 제대로 모르고 일단 지원서부터 마구 넣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갖고 있던 스펙. 이대 영문과, 학점 3.9대, 토익 985점. 미국 유학 경험, 많은 인턴 경험.


나름대로는 이정도면 됐다 누가 날 서류에서 떨어뜨릴소냐 기세가 등등했는데, 쓰는 족족 서류전형에서도 떨어졌다. 대기업이란 곳에서는 서류는 떨어뜨리는 법이 없다는 몇군데 외에는 서류는 합격해본 적도 없다. 그 외에 공사 몇 곳 정도에 서류합격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서류를 합격하면 다행히 실무면접은 좋은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팀플이며 합숙훈련, 실무과제는 자신 있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나는 일을 잘할 자신은 있었다.


근데 매번 나를 떨어뜨린 곳은 도무지 합격 기준을 알 수 없는 임원면접, 최종면접이었다.


서류 광탈과는 달리, 최종면접에서의 불합격은 나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과 근본을 알 수 없는

패배감을 갖게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회사에 맞지 않다, 라는 느낌보다 나는 회사라는 조직에 맞지 않는 인간인가보다, 내가 갈 곳은 어디인가 라는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때 쯤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하고 이 모든 탈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슬며시 든다.


그 때는 사회가 너무 부조리해! 으, 이 망할놈의 세상! 했었는데 회사를 다녀보고 꼰대가 되어 보니 음, 그 때 내가 떨어진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싶었다.


사실 이건 내 케이스에 불과하니,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려는건 아니다. 그치만 그 때 어린 나는 혼나면 눈물부터 났고, 술도 잘 못먹으니 술 한 잔 같이 하고 털어버리는 일도 잘 없었다. 본부장님은 나를 혼내 놓고, 며칠은 본부장님이 더 불편해 하셨다. 그러던 중 팀에 한 분이 출산휴가를 가시게 되었는데, 분명히 인력은 부족한데, 새로 사람을 뽑을 수도 없단다. 고스란히 그 일을 몇 달 간 내가 떠 맡았다. 그리고 그 때의 과부하 + 대학원 진학으로 나도 1년 만에 회사를 그만 두어버렸다.


내가 이럴 줄 알고 그 많은 회사들이 나를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프로페셔널인 면접관에게 그 몇분의 인터뷰 정도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대충 파악이 가능했을테니 내가 떨어질 이유는 개인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나에게는 비교적 명확하다.


취업시장에서 선호하는, 필요한 인재는 아쉽고 아깝지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정성적 지표들은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회사에서 맡게될 많은 일들을 얼마나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잘 해나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치만 그건 함께 일을 시작할 지를 고민하고 결정하게 하는 아주 작은 지표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는 함께 일하고 싶은,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아주 미안하게도, 안타깝게도 일정한 사람들로 정해져 있다. 시킨 일을 군말 없이 오랫동안 열심히 할 사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주택담보대출과 생활비로 계속 돈이 필요한 가장, 젊은 남자일거다. 그러니까 요컨대 '우리 모두 얻고 싶은 대기업 일자리' 는 이 그룹의 사람들에게 먼저 열리게 될거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겪은 현실은 그렇다.


내가 취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그래도 젊은 남자들은 취업이 죽도록 어렵지는 않았다. 요새는 코로나로 인해서 더 힘들어졌다고 하니, 어쩌면 내가 겪은 현실은 지금에 비하면 노다지일 수도 있다.


재재는 말했다. 취업시장이라는게 정해진 기준이 없다보니 힘들다, 그러니 떨어지게 되면 나는 "핸들"인데 그 자리는 "바퀴"가 필요한 자리였나 보다, 라고 생각하라고.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바퀴"가 이른바 "좋은 일자리"라면, 그 바퀴 자리는 정말 많지 않은데 우리들은 참 많이도 "핸들"과 같다고.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힘들지도 모른다고.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한참 동안의 갈 곳 없는 핸들 생활이 나에게는 지금까지 시험 잘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던 나에게 세상이라는 걸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됐다고. 근데 사실 그런 속상하고 힘든 시간,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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