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아트 공연 리뷰 Noisoom 4월

2025년 4월 Noisoom 공연 리뷰

by 강민구


Post AI 시대, 인간 고유의 예술을 기다리다


인공지능과 공존해 살아가야하는 시대에 인간의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인간이 고유성을 갖는 근원적인 이유 중 인공지능과 구분되는 특징으로는 몸, 도덕성, 그리고 성찰능력이 대표적으로 언급되곤 한다. 나는 이 날 사전에 아티스트들에 대한 정보를 보지 않았고 이 공연을 그 자체로 몸의 감각으로만 경험해보려고 했다. 다음은 아무런 사전지식 없는 사람의 이 날 공연에 대한 감각 평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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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아의 《into shiloh》은 투명함과 서늘함을 감각하게 했다. 왜곡시켜도 여전히 존재감을 가질수밖에 없는 피아노 소리와 그 소리의 윤곽이 선명하게 들릴 수 있게 곡을 가득 메우고 있던 깨끗한 적막이 투명한 공간감을 만들었다. 공연 감상 도중 펜을 떨어트려서 주워야 했는데 그 타이밍이 망설여질만큼 몰입도가 높았다. 그 이유는 이 곡에서 적막이 호흡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깨끗한 적막이 배경지가 되어 몸의 예민함을 중화시켰고 그 위에 노이즈라는 낙서의 디테일이 드러나면서 섬세하게 소리의 윤곽이 전달되었다. 내 감상과는 별개로 김노아는 《into shiloh》의 모티브를 성경 속, 가나안을 정복한 이들이 성전을 짓기 전 성막이 머물렀던 성소인 ‘Shiloh’라고 말했다. 이 단어를 빌려 어딘가로 향하고자 했고 또는 그 향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도했다고. 내가 김노아의 첫 번째 곡을 듣고 도달한 적막 속에 고도로 집중된 감각상태도 일종의 성소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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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II for live-electronics》에서는 파도소리와 기차소리, 압력밥솥, 공사장 기계 소리로 추정되는 소리 등 장소성을 가진 사운드들이 들려왔다. 취사가 되려고 하면 파도가 쓸어가거나 차가 지나가고 파도는 점점 차가 가득찬 도시가 되거나 공사 소리가 되고 지하철이 오다가 믹서기에 갈려나가는 등 굉장히 장소적인 소리들이 서로를 밀고 밀려나갔다. 감각은 불쾌했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지쳐갔다. 그리고 소리들이 반복되어 올라오고 떠내려가며 점점 이 장소에 대한 감각은 마비되었다. ‘마비’라고 표현한 이유는 너무 많은 이미지를 섞다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어떤 형태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사운드의 과도한 자극이 감각 자체를 무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필드레코딩한 장소적 사운드들은 공연장에서 연주되며 번역될수록 기존의 경험에서 멀어지며 관객들의 새로운 경험, 새로운 장소로 빚어졌다. 이것은 그의 사운드 비빔(서로 다른 사운드를 무작위로 혼합하는 행위)을 통해 이 장소가 새로운 장소로 변화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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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빈의 《미루..기》는 피아노와 트롬본 소리 때문에 따뜻한 온도감이 느껴지기는 했다. 나중에 아티스트 토크에서 들으니 종지를 계속 미루는 곡이었다고 했는데 나른한 분위기의 연주가 종지 뿐만 아니라 모든 의무를 미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곡의 공연 중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중간에 객석에서 애플워치 알람소리가 한동안 울렸고 관객이 잠시 후 알람을 끈 것이다. 무슨 알람이었는지 몰라도 알람을 미루는 관객의 액션은 이 작품의 주제인 《미루..기》 그 자체여서 마치 이것 또한 의도된 장치인 것 같이 느껴졌다. 애플워치 관객은 정말로 객석에 숨어있던 연주자였을까.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티스트 토크 때 비스포크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생각을 묻는 코너에서 이상빈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비스포크라는 말을 들으니 맞춤oo를 샀던 경험들이 생각난다. 맞춤으로 산 것은 처음에는 내게 잘 맞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도 변해서 맞춤으로 산 oo가 결국에는 나랑 안 맞게 된다. 더이상 나에게 맞춤이 아닌 oo에 현재의 내가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말과 함께 공연 준비를 미루는 자신의 상황에서 이 날 공연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이상빈의 추가적인 말을 함께 떠올려 보니 그는 주어진 상황을 치환해서 수식으로 읽어내는 데에 능숙한 수학적인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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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ut()》의 사운드는 날카롭고 반짝거렸고 유려한 운동성으로 다채롭게 감각을 자극했다. 금속성, 리퀴드 질감의 사운드들이 영롱하게 펼쳐지다가 산산조각나면서 촉감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공들여서 펼쳐지던 사운드와 깨지는 사운드 조각들은 각각 자아와 자아의 해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아는 해체될 듯 망령이 되살아나고 부서져서 바닥에 떨어진 줄 알았던 조각들이 다시 블랙홀처럼 원을 그리며 회오리를 만들기도 하며 치열한 사유과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궁금한 건 어디까지 해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과도한 기대일 수도 있지만 사유라는 틀 까지도 해체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연주를 들었다. 이 날 본 공연 중 감각적으로 가장 선명하고 다채로운 자극을 받았기에 다른 기대도 가져보게 되었던 것 같다. 박다영의 작품이 비주얼 아트와 결합한다면 감각을 재배열하는 경험, 성찰적인 경험을 보다 강렬하게 경험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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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 = 00000.04 h(z》는 감각으로 듣기에는 많이 괴로운 곡이었다. 나중에 인터뷰 때 작가가 인간을 배려하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작곡적 도리를 하지 않은 접근의 사운드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알 수 있었다. 원래 노이즈 음악이 그렇지만 더 의도적으로 거칠게 구성된 사운드는 변연계의 경계반응을 유발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한 것 같았다. 공연 중간에 정말로 왼쪽 귀에서 이명이 세 번이나 들렸기 때문이다.

이 곡의 연주 중에 한 연주자가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어 씨부럴’이라고 발화했는데 나중에 아티스트 토크 때 들으니 임찬희가 연주자에게 ‘육성을 활용하여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소리를 내달라’고 주문한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에 난해한 곡이었다보니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던 저 문장이 임찬희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 곡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임찬희는 아티스트 토크 때 자신이 작곡계의 홍상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홍상수의 영화는 일상의 미세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영화언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세속적인 베이스가 있는데 임찬희의 곡에도 그런 베이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전달력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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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유성에는 몸 뿐만 아니라 성찰이라는 특성도 있다. 성찰은 사유와는 다르다. 사유가 어떤 대상, 개념, 현상 등 외부 세계를 향한 깊은 사고라면 성찰은 자신에 대한 내면적 인 고찰로 그 방향성과 목적이 다르다. 이 날 공연은 다분히 사유적이었지만 성찰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성찰 없는 사유는 피상적 사유에 머무르는 기계적 사고로 흐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예술을 기다려본다.





아티스트의 Noisoom 공연 기록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critical.listening.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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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컬 리스닝 커뮤니티 Critical Listening Community

https://www.instagram.com/clc_noisoom/



글, PORABIM

사진,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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