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솔직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데이비스는 아내 줄리아를 사고로 잃고 나서 방어기제라도 되는 듯, 속에 있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합니다. 컴플레인으로 알게 된 자판기 고객센터의 캐런과 그녀의 아들 크리스 역시 솔직한 매력을 가진 데이비스에게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게 됩니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서로 듣고 이해하게 되면서 셋은 더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저는 영화의 전반적인 전개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굉장히 솔직한 사람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용기를 전달받아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알 수 없는 둘 사이의 유대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아마 서로를 이해하게 돼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특히,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대게 점점 사람들을 만날수록 속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저도 모르게 저를 감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제 성격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솔직한 것도 멋진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해하고 파괴하는 행위
데이비스는 줄리아와 사별했으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하고 슬퍼하죠. 데이비스는 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 없이 항상 움직이는 시계와 같아 보입니다. 결국 데이비스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무관심하다가 내면에 고장이 난 듯 갑자기 승객과 대화를 하다 열차 비상버튼을 누른다든지 직장에서 거슬리는 물품을 분해하고, 결정적으로 아내와 마지막 대화에서 물이 샜던 냉장고를 부셔버리기도 합니다. 또 아내와 같이 살았던 집을 부수고 불도저로 밀어버립니다. 아마 이런 행동들은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기 위해 분해하려고 했던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알지 못했던 감정을 확인하며 결국 아내, 줄리아를 사랑했던 것을 알게 되고 슬픔이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후로 줄리아를 위해 함께 했던 회전목마를 공원에 설치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분명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짚고 넘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나 그에 파생되는 감정들을 덮어둔 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인과 다투고 해결되지 않은 후에 또는 가족들과 싸우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죠. 어떤 사건이 있고 시간이 지나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그 문제나 감정들은 없었던 것처럼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데이비스와 시계처럼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것 같이요.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정면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분해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발견할 수 있고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에 나온 대사 같이 은유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깔때기를 벗고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전엔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아니, 제가 관심이 없었던 걸지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던 것들인데, 데이비스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출근길의 쓰러진 나무, 아내가 남겨놓았던 쪽지들, 그것에는 분명 아내의 사랑이 있었을 겁니다. 데이비스는 나름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나옵니다. 일에서의 열정과 고도의 집중력은 그에게 멋진 집과 많은 재력을 가져오게 했을 것이며 성공한 커리어를 가지게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삶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 누군가에겐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미뤄뒀던 것을 가끔은 떠올리고 현실에서 표현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도 일상을 바쁘게 살다 보면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깔때기를 쓰고 앞만 보고 몰두하는 것처럼 살아가곤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어땠는지, 집 주변 상가에 새로운 가게가 오픈을 언제 했는지, 아버지께서 언제 머리를 짧게 깎으셨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특히 가족과 친구들이 날 얼마나 생각해주는지 깨닫지 못할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삶에 쫓겨서 또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치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