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전라남도 영암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재작년에는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북도 예천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머니 고향을 찾았다. 누군가가 참 민주적인 가족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확실히 우리 가족은 그런 면이 있다.
영암은 본가가 있는 의정부에서 약 350km 떨어져 있다. 차로 4시간 30분 정도 운전해야 도달할 수 있다. 아버지와 함께 운전했기에 피곤하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어머니의 고향 마을로 갔다. 이름은 배날리 마을. 드문드문 있는 집들과 집터에 광활한 논이 펼쳐지고 월출산이 우뚝 솟아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 바뀌어버린 도로나 환경에 당황하신듯했다. 그래도 바로 집터를 찾고 당신의 외삼촌 댁을 찾으셨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와 함께 오셨던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으셨다. 외삼촌할아버지께서 집에 안 계서 연락을 드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머니께서는 어린 시절 기억이 계속 떠오르시는듯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외삼촌할아버지를 뵈었을 때, 어머니께서 아버지(외할아버지)와 함께 있으시면 이런 그림이겠구나 하면서 상상을 해봤다. 아마 어머니께서도 외할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한 번도 뵙지 못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뵌 것 같아서 외삼촌할아버지께 감사했다. 잘생기시고 정정하신 모습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사온 복숭아를 함께 먹고 나오는 길에 외삼촌할아버지께서 손에 만원을 쥐어주셨다. 이 돈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돈의 액수가 그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단 돈 만원이지만 무엇보다 소중했다.
이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 갔다. 아무도 찾지 않은 것만 같은 그런 산속에 계셨다. 어머니께서는 그 주변 산 마을이 외할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하셨다.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인적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낫 2개로 잡초와 덩굴을 걷어내며 산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폭염경보가 발효된 날씨 덕에 산소에 도착한 가족들은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오랜만에 뵙고 또 처음 뵙는 마음에 더운 줄도 모르고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독백으로 흘러나왔다. 어머니께서는 부모님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400km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도 깊고 깊은 산속에 부모님을 모셔놓고 삶에 치이신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더웠지만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정말 못 버틸 것 같을 때 내려왔다.
카페에서 가서 더위를 식히고 가족회의를 통해 해남 땅끝마을에 가기로 결정했다. 영암까지 온 김에 땅끝까지 가보자는 의견이 채택되었다. 정말 민주적인 가족이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이지만 정말로 언제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에 가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가족 모두 땀에 절어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해남 땅끝마을로 진입할 때 그림 같은 해무를 보고는 바로 모노레일을 타러 갔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며 그리고 올라가서 본 바다와 해무는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대낮에 어떤 원리로 안개가 바다 중간에 낀단 말인가. 말로만 듣던 해무를 직접 보니 신기했다. 함께 신기해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흐뭇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는 것은 기억에 잘 남기고 싶은 마음을 방증한다.
내려와 숙소에서 모두 씻고 전복매운탕과 전복죽을 먹으러 갔다. 늦은 저녁 식사로 다들 배가 고팠다.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맛있었다. 기가 막힌 안주도 있으니 가족들과 술을 한잔 했다. 여행도 왔고, 기분도 좋고, 재밌고, 맛있고 해서 조금 더 마셨다.
숙소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누나는 피곤하셨는지 잠을 청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둘이 한잔 더했다. 부모님과 따로 단둘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생각을 달리하게 만든다. 자식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은 다르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술 한잔 하면서 하는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겉핥기식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의 생각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하기도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2일 차부터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본가에서 차로 너무나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차로 5시간 30분 정도 달려야 의정부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내가 자취하는 세종까지도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여유롭게 오전과 점심 일정만 잡았다.
오전에는 송호해수욕장에 갔다. 잠시 바다에 발을 담갔다. 더운 날씨에도 바닷물은 시원했다. 바다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설레고 기분 좋다. 넓디넓은 바다와 접하는 일은 감격스럽기도 하다. 모래사장 뒤쪽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다 같이 누워있었다. 시답잖은 농담도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확실히 여행은 화려한 무엇인가가 없어도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좋은 경치를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맛이다.
점심을 먹고 장거리 운전을 통해서 복귀했다.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는 건 늘 기분이 좋다. 힘들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얼마든지 기꺼이 할 수 있다. 운전 배우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