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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le Apr 09. 2021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비가 온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비를 인지하는 게 오랜만이다. 일을 하면서 실내에만 있다 보면 비가 오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거리도 짧아 아무 생각 없이 비 오는 날들을 보냈다. 눈이 오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었다는 사실도 오랜만에 비를 마주한 것에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집이나 카페 또는 차에서 비 오는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면 묘한 안정감이 든다. 맑은 날과는 다른 차분함과 우울함, 번거로움이 좋다. 거리에 사람이 많이 없어 복작거리지 않으며 우중충한 회색빛 날씨 덕분에 우울감이 찾아온다. 날씨 하나에 이렇게 영향을 받는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여러 부담감을 놓아버리곤 한다. 밖을 나서면 우산을 챙기고 옷이 젖는 상황이 일어나지만 오늘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고 오히려 동질감이 생긴다.


 반대로, 우산이 없을 때는 시원하게 비를 맞는 것도 나름의 일탈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우산이 없을 때는 그냥 비를 맞는다. 물론 소중한 옷이 아닌 경우에만 그렇다. 편하게 입는 옷들은 빨래를 하면 젖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세탁기에서 돌아가는 옷들을 상상하며 편한 옷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또, 따뜻한 물로 샤워한 이후의 모습이 그려져 행복하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가족들과 같이 살 때는 가끔 비에 홀딱 젖어 온 나를 보며 부모님께서 놀라시곤 했으며 왜 전화를 하지 않았냐며 꾸짖으셨다. 내가 비 맞는 게 어때서 이러실까 생각하며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다.


 아직도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비올 때 듣는 노래들을 모아둔 트랙이 있다.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건 아닐까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 몰래 듣는 그 노래들은 왠지 모르게 나만 아는 세계 같이 느껴져 뿌듯하다. 대부분 비와 관련되어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비와 어울리는 멜로디가 있다. 예를 들면 통기타 선율을 지닌 노래다. 기분 탓인지 띵띵 거리는 통기타는 빗속에서 더 마음에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들린다.  


 비가 오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파전과 막걸리다. 비 오는 날 우연히 파전 기름 냄새를 맡을 때면 막걸리 한잔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괜스레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술자리를 제안한다. 비 오는 날은 파전에 막걸리라는 공식을 누가 만들었을까.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굉장히 오래된 공식이 아닐까 예측한다. 아마 비 오는 날 드는 그 묘한 감정들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공유하고 이겨냈던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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