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gle Dec 26. 2021

그의 지갑 속엔 가족사진이

 오랜만에 친구와 토요일 저녁에 만났다. 어느 역 출구 앞에서 보기로 했는데, 마침 그곳에 로또 성지가 있었다. 긴 줄을 보고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토요일 저녁의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줄을 섰다. 평소에 로또를 자주 사지는 않지만 현금이 있고, 문득 보이면 오천 원 이하로 사곤 한다. 같이 만난 친구는 로또 3등 당첨 경험의 보유자다. 번호 하나만 더 맞았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던. 물론 당첨됐으면 진심으로 축하했을 테지만 지금 그 친구의 인생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바로 앞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아버님께서 순서를 기다리고 계셨다. 작은 키지만 덩치가 있으셨고 조금은 허름한 갈색 코트를 입고 계셨다. 친구와  로또가 당첨되면 반으로 나눈다거나 서로    뽑아주겠다며 으스대는 와중에 우리의 순서가 도래했다. 앞에 계신 아버님께서는 서른 개의 게임을 하시겠다면서 지갑을 여셨다. 3 원을 주섬주섬 꺼내는 그의 지갑 속엔 가족사진이 있었다. 누구나 가족사진 하면 떠올리는 그림이었다. 사진관의 어두운 배경 앞에 부모님이 앉아계시고 뒤에  자녀가 서있었다. 아버님은 어떤 마음으로 로또를 사시는 걸까, 아마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많이 얻고 싶으셨던  아닐까,  생각을 했다.  당첨금을 떠올리며 사고 싶은 차를 생각한 아들이라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 순간 주말에 본가를 가지 않았을뿐더러 친구와의 약속으로 잊고 있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가끔씩 로또를 사곤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술을 한잔 하시고 뒷받침을 제대로 못해줘서 항상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땐 그 말씀이 왜 그렇게 듣기 싫었을까. 강인하기만 한 아버지의 약한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돈보다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하다고, 이렇게 잘 자라지 않았냐고 다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씀드리면서도 지금보다 조금 여유가 있었으면 더 행복했을 거란 생각을 떠올린 내가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작년에 이사를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가족사진이 지금까지 없었어서 이사한 집에는 꼭 거실에 걸고 싶다고 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은 가족사진을 지갑에 품고 다니시던 그분의 마음과 같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Instagram을 떠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