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gle Feb 24. 2023

안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하얼빈」, 김훈

 


 이야기와 화자, 주인공


 김훈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에세이로 작가를 처음 접했었다. 「칼의 노래」라는 소설로 가장 유명한 작가지만, 지인의 추천으로 작가의 에세이부터 읽었다. 소설부터 봤다면 작가 자체보다 이야기에 집중했을 것이지만 그의 역사관이나 삶을 알다 보니 소설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야기와 작가, 모두를 떠올리면서 소설을 읽는 경험은 새로웠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적용되는 법칙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용에 집중했다. 내용 뒤에 있는 그 사람의 생각을 예상하려 들면서. 그러니까 결국 내 판단으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판단했다. 이제는 그 사람의 생각이나 살아온 배경이나 지금 처한 상황에도 관심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사실, 이 법칙은 「하얼빈」을 읽고 나서도 적용되었던 것 같다. 안중근 의사라고 하면, 영웅으로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사랑과 인간적인 끌림은 그 사람의 전후를 알 때, 더 깊어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생각하는 안중근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인 끌림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안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답답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얼빈」의 무거운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일제강점기에 느껴지는 답답한 무언가가 책 전반에 깔려있다. 역사를 배울 때도 근현대사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을씨년스럽다는 단어처럼 난 그 분위기가 싫었다. 책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안중근과 이토의 상황이 계속해서 전환됨에도 그 분위기는 유지된다. 원치 않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나 그런 상황을 만들려는 사람들이나 결국 자아내는 분위기는 같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어느 쪽에나 남는다.  


「하얼빈」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실제로도 「영웅」이라는 영화가 있더라. 아직 그 영화를 보지는 못 했지만, 하얼빈을 읽었으니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상상들이 영상으로 잘 구현됐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밌으리라. 영화는 그 먹먹한 분위기를 어떻게 보여줬을까. 제작자들도 내가 느끼는 그 답답함을 느꼈을까.  




 직업이 뭐길래


 김훈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세 개의 직업과 같은 것으로 요약했다. 무직, 포수, 담배팔이.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직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 직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까. 벌이 때문일까. 아니면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했던 그 사람의 노력을 생각해서일까.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서일까. 직업이 뭐길래. 나열해놓고 보니 그 사람의 삶과 큰 관련이 있긴 한 것 같다. 그 직업을 꿈꿨을 수도, 무언가를 포기했을 수도, 잘하는 것일 수도, 적성에 맞지 않아 고생할 수도, 그 직업을 가지려 많은 노력을 했을 수도, 별 노력 없이 가졌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구나 싶다. 그래서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직, 포수, 담배팔이를 통해 김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삶을 떠올려 본다.  




사진출처 : 인천신문 "김훈, 극장에 가다", 유승희, 2013.12.03 http://www.incheonnewspaper.com/news/articleView.html?idxno=99397

매거진의 이전글 몇 문장만으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