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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le May 25. 2023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에 대하여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인생은 조금 헝클어지더라도 즐겨야 할까? 아니면, 균형 잡히고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 제대로 답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본다. 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두 장점을 모두 취하여 살면 너무나 완벽한 삶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쉽다면 누가 이런 고민을 할 것인가. 살다 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 두 명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레몽과 세실은 부녀로 인생을 즐긴다. 아무 걱정 없이.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아내이자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탓도 있을 것이다. 둘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화자인 세실의 감정 표현이 너무나 다채로운 걸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물들의 모든 상황을 꾸미고 알고 있는 세실의 감정 묘사는 무엇보다 흥미롭다. 마치 내가 꾸민 일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두근대기도 했다.


 레몽과 세실, 둘에게 사랑은 순간의 만족에 불과하다. 하지만 둘에게 엘자는 이렇게 말하고 대한다. "넌 너무 사랑은 단순한 걸로 생각해. 사랑이란 하나하나 동떨어진 감각의 연속이 아니란다... 그건 다른 거야 지속적인 애정, 다정함, 그리움이 있지...." 요즘 많은 영상을 접하게 되는데, 설레는 순간만이 사랑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사실 내가 그런 것만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지속적인 애정과 다정함, 그리움을 사랑이라기보다는 정으로 여겼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지속적인 애정과 다정함, 그리움을 느끼는 대상을 떠올려본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특히 사랑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와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을 만났을 때 누군가는 호감을 느껴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가치에 위협을 느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선망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악을 쓰고 내가 맞다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 그저 다른 부분을 알고 내가 인정할 수 있고 좋은 부분을 닮아가면 그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제목이 왜 '슬픔이여 안녕' 일까 생각해 보았다. '슬픔'은 엘자를 뜻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해석한다. '슬픔'은 생각보다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아우르는 단어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의 종착지처럼 느껴진다. 세실이 엘자를 만났을 때 느꼈던 답답함과 질투심, 그리고 엘자를 잃었을 때의 충격과 상실감들을 포함한다. 또한, 엘자처럼 되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세실은 이후 파리로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엘자가 떠오를 때 '슬픔이여 안녕'을 말하면서 엘자를 통해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보냈던 게 아닐까.  



사진 출처 : 아트인사이트, "[Opinion] 프랑수아즈 사강의 매혹적인 문학 [문학]", 백유진,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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