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찾아온 번아웃
윤석열 나이로 30대 초반, 한국 나이(?)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이 시기에 나는 번아웃을 경험하는 중이다. WHO에서 발표한 '번아웃'의 정의에 따르면 에너지가 고갈, 소진된 상태로 업무에 대한 부정적 또는 냉소적인 감정과 심리적 괴리감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의학적 질병'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직업병'의 일종이다.
돌이켜보면 해가 바뀌면서 유독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주기적으로 받고있던 유방외과 검진결과 이상 징후가 포착돼 조직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수술. 악성 종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말의 발병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제거하는 것이 좋다는 게 담당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수술만은 아니길 바랬는데...' 라는 생각도 잠시,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마음에 바로 수술 일정을 잡았고 2박 3일의 입원을 거쳐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수술 직후 충분한 요양 없이 바로 회사에 복귀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의사 선생님 말로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거라 했지만, 내 몸은 더이상 회사 업무를 버틸 수 없을만큼 힘이 빠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출근하는 길은 몸도 마음도 무거웠고, 하루종일 보고서를 붙잡고 자리에 앉아있는 일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다.
아니, 생각해보면 수술을 하기 이전부터 나는 이미 번아웃 상태였다. 언젠가부터인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이 전혀 기쁘지가 않았고 내 삶은 행복과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들을 하고싶은 사람인지도 점점 잊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힘들고 지친 상태였지만, 단지 수술이라는 큰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내 몸이 백기를 든 것일지도 모른다.
대기업 직장인 10년차. 처음 취업을 하고 30대의 나를 상상했을 땐 그럴듯한 회사원으로 성장해있을 거라 꿈꿨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에게 더 잘 맞는 일을 찾고 성장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직장생활과 학업생활을 병행하면서 빡세디 빡센 MBA까지 마쳤다.
이력서 상의 내 학력은 한층 화려해졌고, 두 번의 이직을 통해 내가 원하고 바라던 직업적 타이틀도 손에 쥐었다. 하지만 번아웃이 온 지금 정작 나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성장'을 위해 달려왔지만, 정작 내 스스로를 소진시키면서까지 성장할 이유는 없었다.
돌아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모른채 앞을 보며 달려왔던 것 같다. 발전해야하고 성장해야한다는 압박감(?)과 의무감을 스스로에게 지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저전력모드' 상태를 넘어, 완전히 '방전' 상태에 다다랐다.
이 시간을 계기로, 서툴고 방황했던 30대의 나를 돌아보며 남은 30대의 삶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싶다. 이 글들은 앞으로를 살기 위해, 잘 살아내기 위해 쓰는 기록이다.